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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뇌과학자 요시키 사사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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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13 11:01
전세계의 과학자들은 일본의 코베에 위치한 이화학 연구원 발달생물학 연구센터(RIKEN Center for Developmental Biology, CDB)의 새롭게 떠오르는 줄기세포과학자 중에 한 명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그는 이 분야에 흥분과 엄격함을 가져왔지만 52세의 나이로 지난 8월 5일에 사망했다. 사사이의 자살에 대한 이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지난 1월에 <네이처>지에 발표되면서 문제가 된 두 가지 논문으로 인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국제줄기세포연구회의 전임 회장인 캐나다 토론토의 어린이 병원 (Hospital for Sick Children)의 자넷 로산트 (Janet Rossant)는 “사사이 박사는 엄격하고 혁신적인 과학자였으며 그의 죽음은 너무 슬픈 일이다. 그의 가장 중요한 줄기세포계에 대한 기여는 발달생물학의 배경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사사이의 연구는 발달생물학에서 줄기세포 그리고 조직발생론과 조직공학까지 다양한 부분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의 성공은 세포배양과정을 통해서 배아줄기세포가 분화해서 성체세포형태, 특히 신경세포로 발달되는데 부가되어야 할 요소나 제거되어야 할 요소가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한 오랜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지난 2012년 <네이처>지와의 인터뷰에서 에디 드 로버티스(Eddy De Robertis)는 “그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고 말했다. 드 로버티스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로스앤젤레스의 발달생물학자로서 1990년대에 사사이의 박사후 연구의 지도를 맡았다. 그는 사사이가 한 번 자신이 쓴 논문초고를 잃어버린 후에 컴퓨터로 자구로 완전히 다시 썼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나는 그런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사이가 이룬 혁신 중 하나는 2007년에 배아줄기세포가 서로 분리되면서 죽어가는 것을 막는 약물물질을 발견한 것이었다. 이전에 배아줄기세포는 수동적으로 매우 느리게 잘라 내야 했으며 부분적인 군집으로 전환시켰다. 그 결과는 다양한 실험결과로 나타났다. 브뤼셀의 브리에 대학 (Vrije University)의 뤽 레인스 (Luc Leyns)는 “그의 논문은 이러한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고 말했다. 사사이의 성공은 이후에 계속되었다. 뉴런의 분화성공에 근거하여 사사이는 배아발달을 모방하여 그의 세포가 3차원 구조로 자기조직을 할 수 있게 했으며 그 중에서 고블렛 모양의 망망조직으로 안배(optic cup)라고 알려진 조직과 대뇌피질과 유사한 복잡한 조직막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발견은 실험관에서 뇌의 조직발생을 가능케 했다. 레인스 (Leyns)는 “마침내 우리는 배아를 미세하게 해부할 필요없이 뇌발달을 조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레인스는 어떻게 현대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지고 진화를 이룰 수 있는가를 알려주기 위해서 석사과정 학생들에게 사사이의 연구를 읽게 한다”고 말했다. 사사이가 안배를 연구했던 유니버시티 컬리지 런던 (UCL)의 피트 코피 (Pete Coffey)는 사사이는 영감을 주는 과학자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의 발표의 명확성, 흥분감 그리고 발표후 토론에 대해서 학생들은 아직도 논의하고 있다. 그는 우리 연구팀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사사이의 연구는 황반변성을 포함한 다양한 질병의 치료에 기여할 것이다. 코피는 “그의 발견은 맹인들의 질병에 대한 세포치료를 개발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사사이는 그의 3차원 뇌구조를 발전시켜 혈액공급이 가능한 뇌하수체를 만들고자 했다. 그는 각기 다른 뇌부분이 복잡한 네트워크 구조를 만들 수 있는가를 알아내기 위한 좀 더 거대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2012년 12월에 그는 CDB의 방문연구자였던 하루코 오보카타 (Haruko Obokata)가 성체세포에 스트레스를 가해서 배아와 같은 줄기세포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초고작성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자극촉발다능성(stimulus-triggered acquisition of pluripotency) 또는 STAP세포로 알려진 이 방법은 2014년 1월에 <네이처>지에 두 편의 논문으로 발표되었으며 사사이는 공동저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 두 논문에서 많은 문제가 발견되었으며 7월 2일에 <네이처>지는 발표를 철회했다. 지난 4월 1일에 이화학연구원의 위원회는 오보카타가 그림을 조작하고 다른 현상을 자신의 학위논문에서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한 이미지를 사용하여 과학적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했다. 사사이는 직접적인 참여는 하지 않았다고 결론내렸지만 그는 이 프로젝트를 관장하는데 있어서 관리의 책임이 있다고 위원회는 판단했다. 그는 아직도 이화학 연구원의 상벌위원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동료들은 사사이가 이렇게 특별한 주장의 재현가능성에 대해서 확실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확인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처음에 이 논문이 발표되었을 때 과도평가하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사사이를 아는 사람들은 이것은 매우 희귀한 실수라고 말했다. UCLA의 피자랩 세미나에서 사사이를 알게 된 레인스는 사사이는 항상 독립적인 확인을 요구하던 사람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의 전문분야가 아닌 STAP세포 연구에서 실수를 저지르긴 했지만 그의 연구투명성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레인스는 말했다.

일본에서 언론들은 사사이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그에 대해서 확인되지 않은 공세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일부는 사립탐정이 주장한 것을 발표하고 있다. 사사이가 부소장을 역임했던 CDB의 관리팀은 STAP세포의 발견을 좀 더 센세이션하게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서 오보카타가 할머니가 준 앞치마를 입고 실험을 했다는 내용을 기자회견장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이 보도에 의하면 사사이는 STAP세포 연구를 통해서 좀 더 많은 연구비를 얻기 위한 욕망에 사로잡혀 이 일을 추진했다고 주장했다.

<네이처>의 뉴스팀과의 마지막 이메일에서 사사이는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평가하지 못했지만 그는 연구비를 위해서 그런 일을 하거나 실험실에서 오보카타가 무엇을 입도록 결정하는데 관여하지 않았다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지난 6월에 사사이와 CDB에 대한 또 다른 주장에 대해서 물었을 때 물질과학자인 도쿄대학의 터루오 키시 (Teruo Kishi)도 다른 위원회 구성원들도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우리 위원회는 우리의 임무를 완수했으며 이제 해산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위원회의 구성원들은 또한 이러한 주장에 대한 증거 제시를 거부하면서 “불필요한 혼란이나 오해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전례없는 움직임을 통해서 독립적 조사위원회는 CDB는 해산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 2000년에 CDB를 창립하는데 주요 관련자였던 사사이에게 “이러한 위협은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왔을 것”이라고 런던의 의학연구위원회 (Medical Research Council)의 줄기세포와 발달생물학자인 로빈 로벨 배지 (Robin Lovell Badge)는 말했다. 그는 “이들은 매우 불공정했다”고 말했다. 사사이의 자살의 이유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그는 CDB의 연구건물의 계단에 목을 메어 죽어 있었다. 그의 가방에서는 세 통의 유서가 발견되었는데, 하나는 CDB 관리당국에서 그리고 하나는 사사이의 실험팀에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오보카타에게 쓴 것이었다.

코피는 “사사이의 죽음은 과학과 재생의학에 큰 손실이다. 그리고 그의 가족에게는 엄청난 상실”이라고 말했다. 레인스는 사사이를 “저녁에 실험실을 나서면서 아이들과 목욕을 함께 하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집으로 갔던 아버지였으며 다시 실험실로 돌아와 늦게까지 연구를 지속했다”고 기억했다. 레인스는 “나는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2년에 드 로버티스는 그는 사사이가 “연구분야의 빛과 같은 존재이며 오랜 성공을 이루어 자랑스럽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의 성공의 길은 비극적으로 끝나고 말았다.

출처: <네이처> 2014년 8월 6일 (Nature doi:10.1038/nature.2014.15679) / KISTI 미리안 글로벌동향브리핑 2014-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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