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쥐가 겁을 상실하면 ‘기생충’ 때문?

  • AD 최고관리자
  • 조회 2538
  • 2013.10.01 11:06
우둔한 고양이와 영리한 쥐를 주인공으로 하여 시청자들에게 커다란 재미와 웃음을 안겨주었던 미국산 애니메이션인 ‘톰과 제리’.

이 애니메이션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던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고양이 앞에 쥐’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강자와 약자의 구분이 분명한 고양이와 쥐의 관계가 ‘톰과 제리’에서는 반대로 설정이 되어 있는 스토리텔링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경우 여전히 쥐는 고양이에 꼼짝 못하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최근 ‘톰과 제리’의 주인공들처럼 이 같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고양이와 쥐의 관계가 미국의 과학자들에 의해 새롭게 밝혀져 흥미를 끌고 있다.

겁을 상실하는 중상인 톡소플라즈마증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사이언스데일리(Sciencedaily)는 미 캘리포니아주립대의 과학자들이 최근 원충성 기생충인 톡소포자충(Toxoplasma gondii)에 감염된 쥐들의 경우 본능적으로 피하게 되어 있는 고양이 냄새에 잘 반응하지 않는 상태로 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보도했다. 해당 기생충에 감염된 쥐들은 일종의 겁이 상실된 증상인 톡소플라즈마증(Toxoplasmosis)을 띠게 된다는 것.

▲ 톡소포자충의 현미경 사진  ⓒwikipedia
사이언스데일리의 보도에 따르면, 톡소포자충은 실험쥐를 대상으로 한 테스트에서 뇌의 기능을 영구적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톡소포자충은 고양이과 동물 외에도 거의 모든 온혈동물에 감염을 일으킬 수 있으며 사람도 쉽게 감염되기 때문에, 전 세계 인구의 약 1/3 정도가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톡소포자충은 감염되었다고 해서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는 기생충이기 때문에 면역체계가 정상인 사람은 감염이 되더라도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임산부의 경우는 기생충이 태반을 통해 태아에게 전달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 감염원 중 하나다.

반면에 사람과는 달리 쥐에 대해서만큼은 톡소포자충의 영향이 매우 특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연구진의 실험결과에 따르면, 정상적인 쥐의 경우 고양이 냄새를 맡으면 바로 도망가지만 이 기생충에 감염된 쥐들은 고양이를 무서워하기보다는 오히려 끌리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

번식을 위해 기생충이 진화한 것으로 추정

캘리포니아주립대의 연구원인 웬디 잉그램(Wendy Ingram)은 분자 및 세포 생물학 교수인 마이클 아이젠(Michael Eisen)과 엘렌 로베이(Ellen Robey)의 도움을 받아 톡소포자충의 감염이 쥐가 가지고 있는 고양이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

이들은 실험쥐에 톡소포자충을 감염시켰는데, 감염된 쥐들은 이내 고양이 냄새에 대한 공포가 실종되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후 4개월이 지난 뒤 연구진은 면역과 관련된 실험을 진행하다가 좀 더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되었다.

연구진은 실험에 사용한 기생충의 유전자 조작을 거쳐 효과적인 면역반응을 일으키도록 했고, 이를 통해 실험쥐가 감염을 극복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난 후에 쥐의 뇌에서는 병원체가 발견되지 않았는데, 연구진은 실험쥐들이 예전의 감염되었던 3주 동안의 경험으로 인해 여전히 고양이 냄새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잉그램 연구원은 “당초에는 병원체가 죽었기 때문에 실험쥐의 행동이 정상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말했다. 연구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아이젠 교수도 “실험쥐는 기생충이 사멸했음에도 불구하고, 뇌에서 고양이의 냄새를 감지하는 능력을 한 번 잃은 뒤에는 과거의 행동을 지속했다”고 밝혔다.

아이젠 교수는 “이 연구를 통해 적어도 톡소포자충이 직접 뇌의 특정 부위에 물리적인 영향을 주어 쥐의 행동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틀렸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라며 “왜냐하면 기생충이 사라지고도 고양이를 피하지 않는 행동이 계속 유지되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 톡소포자충의 감염경로와 부위  ⓒ미 질병통제 예방센터

아이젠 교수는 “톡소포자충이 과연 어떠한 메카니즘으로 종숙주라 할 수 있는 고양이가 먹이인 쥐를 잘 잡도록 돕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 단세포 기생충이 우리 인간들보다도 뇌의 메카니즘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종숙주란 기생충이 알을 낳아 번식하는 숙주를 의미하고, 중간숙주는 알이 성숙하고 자라는 동안 기생하는 숙주를 뜻한다. 현재 연구진은 톡소포자충이 고양이를 종숙주로 하면서 중간숙주로 쥐를 선택하여 번식의 터전인 종숙주가 먹이를 잘 잡을 수 있도록 중간숙주에 침투해 이를 조종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쥐는 고양이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하기 때문에 더 쉽게 잡혀 먹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쥐 안에서 살던 유충들이 건강한 고양이의 몸 안으로 들어가 다시 성충이 될 때까지 지낸다는 메카니즘을 제시한 것이다.

이 같은 메카니즘에 대해 일부 진화론자들은 기생충이 생명의 주기를 늘리기 위한 진화의 적응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그 이유로 톡소포자충은 고양이의 내장 안에서만 번식이 가능하기 때문에 중간숙주인 쥐를 종숙주인 고양이에게 먹힐 수 있도록 중간숙주를 조종하는 기능이 진화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한편, 인간에게 있어서 톡소포자충의 감염은 행동의 변화와 정신분열을 일으킨다는 연구가 지난 2002년에 발표된 적이 있다. 당시의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이 기생충에 감염된 사람에게서는 교통사고의 위험이 늘어난다는 결과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2011년에는 고양이 냄새에 대해 인간의 행동이 변화했다는 점을 발견한 연구보고서도 발표되었다.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일반인들보다 이 톡소포자충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으며, 정신분열증을 치료하기 위한 약물은 톡소포자충의 증식을 부분적으로나마 억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출처 : 사이언스타임즈
김준래 객원기자 | joonrae@naver.com

저작권자 2013.10.01 ⓒ ScienceTimes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다음요즘 싸이공감 네이트온 쪽지 구글 북마크 네이버 북마크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