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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닌 나' 장내미생물의 공생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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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25 10:45

숙주와 세균의 엎치락뒤치락 공생관계


몸에 좋은 세균이 있다는 정도의 상식은 널리 퍼져 있지요. 과학자들은 더 나아가 ‘몸에 좋음’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세균이 주는 긍정 효과가 어디까지인지, 숙주와 세균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 연구합니다. 다양한 모델 동물에서 장내미생물이 연구되었는데, 이 글에선 선충을 이용한 가장 극적인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00microbiota5.jpg » 고초균(위)과 대장균(아래). 출처/ * 아래에 표기
이번 글의 주제 논문

Cabreiro F, Au C, Leung KY, Vergara-Irigaray N, Cocheme HM, Noori T, Weinkove D, Schuster E, Greene ND, Gems D. Metformin retards aging in C. elegans by altering microbial folate and methionine metabolism. Cell.  2013 Mar 28;153(1):228-39. doi: 10.1016/j.cell.2013.02.035.

Gusarov I, Gautier L, Smolentseva O, Shamovsky I, Eremina S, Mironov A, Nudler E. acterial nitric oxide extends the lifespan of C. elegans. Cell. 2013 Feb 14;152(4):818-30. doi: 10.1016/j.cell.2012.12.043.


A: 여기, 최상급 캡슐 두 개만 주세요.
B: 아! 최상급을 찾으시는군요! 최상급 캡슐에는 비타민 비와 케이, 세로토닌을 합성할 수 있는 애들이 기본으로 들어가고요, 환경호르몬을 제거하는 애들도 들어가 있습니다.
A: 사실 근데 저한테 중요한 건 먹어도 살 안 찌게 해주는 애들이거든요. 그런 게 있나요?
B: 당연하죠! 최상급 캡슐이면 하루에 1만 칼로리까지는 드셔도 전혀 비만이 안 되실 겁니다. 소화 불량 당연히 없고요. 면역력도 좋아져서 지금 유행하는 젖소 독감은 걸리지도 않으실 겁니다. 비용을 문제 삼지 않으신다면 자녀분께는 새로 나온 최상급-유아-프리미엄 캡슐 어떠세요? 미약하긴 하지만 생장 기간이 길어지고 수명도 수 년 정도는 늘려줍니다.
A: 좋아요. 포장해 주세요.
B: 잘 아시겠지만, 입으로 삼키면 효과가 10%도 안 됩니다. 꼭 화장실에서요, 아시죠?

런 가상 대화는 이번 글을 다 읽고 나면 이해할 수 있는 미래 과학 소설의 한 장면일 수 있습니다. A와 B는 무슨 거래를 하고 있는지, 대화의 소재가 된 재능 많은 '애들'은 누구인지 짐작이 되나요? 입으로 먹었을 때 효과가 감소하는 이유도 또한 궁금합니다. 글을 읽으며 얼마나 현실적인 내용인지 직접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뜬금없지만 간단한 퀴즈 하나 내겠습니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세포가 많은 곳은 어디일까요? 수많은 신경 세포가 복잡한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학습과 기억이 이루어지는 뇌일까요? 아니면 계속해서 새로운 생식 세포들을 만들어내야 하는 남성의 생식 기관 같은 곳일까요? 힌트는 앞의 소설에도 있습니다.

눈치 빠른 분들은 아시겠지만, 정답은 바로 소화기관 내부입니다. 특히 장의 내부에는 엄청난 수의 세균들이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수는 숙주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체세포 전체의 10배(1014개)에 달합니다. ‘수’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우리의 몸에는 나의 것이 아닌 남의 세포가 훨씬 더 많은 셈입니다. ‘나’를 수적으로 압도하고 있는 ‘그들’은 단순히 내 몸속에서 밥만 얻어먹는 손님이거나 지나쳐가는 방랑객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의 신체 기관처럼 작동함으로써 ‘우리’가 됩니다.


재주 많은 미생물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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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microbiota1.jpg » 그림1. 숙주와 미생물군 간의 상호작용: 장내의 미생물들은 숙주에게 여러 가지 이점을 제공합니다. 병원균으로부터 숙주를 보호하고 면역계를 활성화할 뿐 아니라 다양한 대사 산물을 제공합니다. 종합적으로 숙주의 적응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기여할 수 있습니다. 출처/ Cabreiro and Gems, 2013 미생물군(microbiota)으로 불리는 우리 몸속의 미생물들은 다양한 물질대사를 통해 숙주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실제로 혈액을 타고 흐르는 대사 산물의 10%에 미생물의 역할이 관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Wikoff et al, 2009). 그뿐만 아니라 숙주의 발생 과정, 생식, 면역계, 수명 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알려졌습니다. 모든 내용을 소개할 수는 없지만, 우리 몸속의 미생물들은 인간 세포의 능력을 뛰어넘는 생화학 공장을 구축함으로써 ‘건강’ 전반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중요성에 주목하여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는 인간의 미생물군 정보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인간의 건강과 질병에 도움이 될 정보를 얻기 위한 인간-미생물체 프로젝트(Human-Microbiome Project, HMP)를 시행한 바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가능했던 이유는 DNA의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기술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장내 미생물만 하더라도, 1000여 종의 세균이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개별적인 하나의 종만을 분리, 배양하여 연구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미생물군의 전체 유전체를 한꺼번에 분석하는 방법론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단순히 특정 미생물의 ‘존재’만을 관찰하게 되면 상관관계 이상을 말하기 어렵게 됩니다. 특정한 미생물군의 변화가 숙주와의 상호작용의 원인인지 결과인지를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개별적인 미생물 종의 영향을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는 환원적인 연구가 꼭 필요합니다.

00microbiota2.jpg » 그림2.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시행한 인간-미생물체 프로젝트(Human-Microbiome Project, HMP) : 위의 그림은 프로젝트의 로고입니다. 아래 그림은 프로젝트에서 수집하고 분석하려고 하는 인간의 다섯 가지 기관(비강, 구강, 피부, 위장, 생식기)을 보여줍니다. 출처/ 미국 국립보건원 홈페이지, http://commonfund.nih.gov/hmp/ 예쁜꼬마선충 같은 단순한 모델 동물이 도움 되는 부분이 이 지점입니다. 예쁜꼬마선충은 하나의 미생물 종만으로 쉽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선충이 살아가는 배지(배양접시)는 완전히 멸균된 상태로 제작되기 때문에 이후에 특정한 세균을 키워서 먹이로 주는 과정을 다양하게 변화시키며 연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몸이 투명하므로 세균에 형광으로 표지된 단백질을 발현시키면 장내에 세균 군집을 형성하는 과정을 눈으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예쁜꼬마선충의 장을 잠깐 들여다보실까요. 선충의 장은 20개의 세포가 단일 층으로 관을 형성하고 있으며 가장 큰 체세포 기관입니다. 그 무게만도 개체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합니다. 내강을 향하고 있는 장 세포 표면에는 솔 가장자리 세포(Brush border cell)들이 인간의 소장 융털과 비슷한 미세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선충의 장은 잠재적으로 위험한 환경에 대해 일차 방어선의 역할을 합니다. 외부 물질이 선충의 세포 내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어쨌거나 장 세포를 통과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영양분을 추출하고 흡수하며 저장하는 과정에 덧붙여 노폐물을 분비하는 과정도 장에서 일어납니다. 또한, 개체 전반의 건강과 수명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기관입니다. 장 세포는 다른 기관을 조절하는 신호 전달 물질을 분비하기도 하고, 세균에서 유래한 물질들에 의해 스스로의 기능이 조절 받기도 합니다.

단 하나의 종만을 장내 미생물로 지니는 모델을 사용한다는 것은 실험에서 다루기 쉬워진다는 뜻이 되며, 특히나 숙주와 기생자 양쪽 모두가 유전학적으로 잘 규명된 모델일 경우는 더욱 더 유용한 실험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벌레와 세균의 어색한 소개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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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사는 예쁜꼬마선충의 장 속을 살펴보면, 다양한 종의 미생물 군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사람과 비슷한 점입니다. 그러나 실험실에서 선충을 키울 때에는 단 하나의 세균 종, 대장균만 먹이로 제공합니다. 자연의 장내미생물을 전 세계의 선충 연구자들이 똑같이 재현하기는 매우 힘들 것이고, 서로 다른 장내미생물 구성 때문에 선충의 생리 작용에서 차이가 발생한다면 실험 결과의 재현성도 보장하기 어렵게 됩니다. 선충을 유전학 모델로 확립한 시드니 브레너 할아버지가 대장균을 대표 먹이로 결정하는 데 얼마만큼 고민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대장균은 인간 장내에서도 흔하게 발견되고 대개 독성이 매우 낮다는 점 등 덕분에 발탁된 게 아닐까 합니다. 그때의 결정으로 실험실 내의 선충들은 대부분 대장균을 주식으로 삼으며 50년 세월을 보내고 있는데 입맛에 잘 맞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00microbiota3.jpg » 그림3. 예쁜꼬마선충의 장: 왼쪽 그림은 장 세포의 핵을 녹색형광단백질로 표지한 것입니다. 오른쪽 그림은 장 속의 지방을 빨간색 염색약으로 염색하고, 선충이 소화하지 못하는 미세한 구슬에 녹색형광단백질을 표지하여 장의 내강을 구분할 수 있도록 찍은 것입니다. 출처/ http://www.visembryo,com/stry1140.html, http://www.wormbook.org/chapters/www_intestine/intestine.html
예쁜꼬마선충과 대장균의 관계는 예쁜꼬마선충의 생애 동안에 대역전을 겪습니다. 초기에는 예쁜꼬마선충이 대장균을 잡아먹으며 살지만, 노년 이후에는 반대의 관계가 됩니다. 예쁜꼬마선충이 포식자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첫 번째 소화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인두의 맷돌 근육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대장균을 부수어 주는지, 장에서 얼마나 빨리 소화 및 흡수가 일어나는지, 면역계가 얼마나 활성화되어 있는지, 배변 활동은 잘하는지, 살아남은 대장균은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등이 중요한 쟁점이 됩니다.

예쁜꼬마선충에는 소화 효소에 의해 단계적으로 음식을 분해하는 시스템이 거의 없어서 맷돌 근육에 의한 물리적 분해가 가장 중요한 소화 과정입니다. 젊고 건강한 예쁜꼬마선충의 맷돌 근육은 대장균을 완전히 부수어서 살아남을 수 없게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맷돌 근육이 약해져 살아있는 대장균을 조금씩 삼키게 됩니다. 만약 예쁜꼬마선충이 2주 이상 생존하여 노년에 접어들면 맷돌 근육이 약해진 데 더해서 면역력도 약해져 대장균의 번성을 막을 힘이 없습니다. 그러면 예쁜꼬마선충은 만성적인 소화 불량, 변비로 고생하다가 힘들게 생명을 내려놓습니다. 대장균에게 예쁜꼬마선충의 사체는 '헨젤과 그레텔 오누이의 과자집'과 같습니다.
00microbiota4.jpg » 그림4. 사냥꾼에서 먹이가 되기까지 : 예쁜꼬마선충의 생애동안 포식자-피식자의 관계가 뒤바뀌게 됩니다. 발생 초기에는 대장균이 완전히 부수어져서 살아남을 수 없지만, 중간 단계에서는 일부 살아남은 대장균이 장 내를 점유하고 군집을 형성하며 숙주와 상호작용합니다. 만약 더 나이가 들어 면역계가 쇠퇴하고 대장균이 지나치게 번성하게 되면 불균형이 일어나 예쁜꼬마선충의 건강은 위협받게 됩니다. 출처/ Cabreiro and Gems, 2013
그렇다면 공생이라고 부를 만한 근거가 있을까요? 어떤 방향이든 단순한 포식자-피식자의 관계는 아닐까요? 실험적으로 선충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 활발한 대사를 하는, 즉 살아 있는 세균이 필요하다는 것은 잘 알려졌습니다. 영양은 풍부하지만 무균 상태의 밥(주로 콩 단백질과 효모 추출물을 멸균하여 먹입니다)을 선충이 먹을 경우, 발생 과정이 느려지고 생식 능력이 감소하여 자손을 덜 낳게 됩니다. 그러나 이때 산화 스트레스나 열 충격에 대해서는 높은 저항성을 보이고, 성체의 수명이 증가하게 됩니다(Houthood et al, 2002). 이는 식이제한(Dietary Restriction)에 의한 수명 증가 효과와 유사합니다. 영양이 풍부한 식사를 하는데도 말입니다!

이때 살아 있는 대장균을 함께 먹이면 정상적인 성장과 생식 과정이 회복됩니다. 반대로 죽은 대장균은 아무리 먹여 보았자 식이제한 효과를 회복시키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장균이 제공하는 결정적인 식사는 ‘대사 활동’ 그 자체임이 드러난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선충이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생활하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대장균이 필요하며 이는 대장균이 단순한 밥이 아니라 필수적인 공생자로서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살아 있는 세균의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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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장내 미생물의 일반적인 유용함은 꽤 알려졌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배변에 문제가 있다 싶으면 슈퍼마켓에서 파는 발효 요구르트를 사먹을 생각을 하는 것처럼 몸에 좋은 세균이 있다는 정도의 상식은 널리 퍼져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몸에 좋음’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세균이 주는 긍정적 효과가 어디까지인지, 숙주와 세균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이런 고민의 맥락에서 다양한 모델 동물에서도 장내 미생물의 역할이 연구되었지만, 선충을 이용한 가장 극적인 사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연구는 미국 뉴욕대 의대에서 에브제니 누들러(Evgeny Nudler) 그룹에 의해 진행된 고초균(Bacillus subtilis)에 관한 실험입니다.

고초균은 청국장이나 낫또의 제작 과정에서 발효를 담당하는 세균입니다. 선충이 자연에서 살고 있을 때에는 썩은 과일을 주요한 거주지로 삼기 때문에 그곳에서 많이 발견되는 고초균이 가장 주된 식사 메뉴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대장균을 먹는 예쁜꼬마선충보다 고초균을 먹는 세균이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은 10년 전에 알려졌습니다(Garsin et al, 2003).

식단을 바꾸는 것만으로 수명이 길어지는 걸까요? 그렇다면 선충은 물론이거니와 인간에게도 중요한 소식입니다. 식이제한이나 생식 줄기세포 제거 등 방법으로 수명이 연장된다는 것은 많이 연구된 분야이지만, 이런 복잡한 방법이 아니더라도 주식을 단지 쌀밥에서 감자밥으로 바꿔 먹는 정도로도 만일 수명을 늘릴 수 있다면 상당히 솔깃한 얘기이겠죠.

고초균이 어떤 역할을 하기에 고초균을 주식으로 먹는 선충이 오래 사는지는 오랜 궁금증이었는데, 누들러 그룹에서는 일산화질소(NO)의 생산이 그 비결의 핵심임을 밝혔습니다.

고초균이 예쁜꼬마선충 장내에서 합성한 일산화질소는 자유롭게 장내벽 세포로 확산하며 퍼져나갑니다. 일산화질소는 예쁜꼬마선충 세포 내부에서 DAF-16이나 HSF-1 같은 잘 알려진 전사 인자들의 활성을 증가시킵니다. 그러면 이런 전사 인자의 조절을 받는 하위 유전자들이 대량으로 발현되면서, 열 충격에 대한 저항성이 높아지고 또한 수명이 증가합니다. 자연에서 사는 예쁜꼬마선충은 실험실 안보다 다양하게 변하는 온도 조건에서 생존해야 하는데, 그런 환경에서는 일산화질소에 의한 유전자 발현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쁜꼬마선충은 일산화질소를 합성하는 유전자가 없기에, 전적으로 세균이 제공하는 일산화질소에 의존해야 합니다. 반면 인간은 일산화질소를 합성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어느 정도 생산할 수 있습니다. 내피세포에서 합성되는 일산화질소는 주변의 근육과 혈관으로 확산하여 근육의 이완과 혈관의 확장을 일으킨다고 알려졌습니다. 결국 인간이 일산화질소를 많이 생산하는 장내 미생물을 가진다 해도 예쁜꼬마선충에서만큼 극적인 수명 증가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일산화질소에 의해 조절되는 핵심 전사인자인 DAF-16 HSF-1은 인간에도 보존되어 있으므로 장내미생물이 긍정적 효과를 줄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00microbiota5.jpg » 그림5. 고초균과 대장균 : 위의 두 그림은 고초균의 모습을 아래의 두 그림은 대장균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언뜻 보기에는 전체적인 막대 모양의 형태나 섬모와 편모 구조 또한 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나 둘은 세포 외벽 구조에 큰 차이가 존재하며 생화학적인 대사에 있어서는 훨씬 다른 양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출처/ NASA, http://shop.arrayit.com/bacillus_subtilis.aspx, http://pilotspoint.net/, http://io9.com/5877774/bugs-from-your-colon-could-produce-the-worlds-next-great-energy-source


약으로 미생물군 바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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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초균의 일산화질소 실험은 숙주가 건강을 유지하는 데 공생 세균이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일산화질소를 잘 만드는 공생 세균을 지니고 있다면 자연 환경에 잘 대처하는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건강해지고 싶다면 이미 지니고 있는 장내 미생물군을 잘 조작해 이용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영국 런던대학교의 데이비드 젬스 그룹은 메트포민(Metformin)이라는 약물의 효과를 연구했습니다. 메트포민은 혈당량을 낮추는 효과 때문에 당뇨병의 치료 목적으로 널리 사용되던 약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혈당량을 낮추는 것뿐만 아니라 암 발생의 위험을 낮추어주고 노화를 늦출 수 있다는 것까지 쥐 모델에서 연구됨으로써 과학자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데이비드 젬스는 예쁜꼬마선충을 이용해 메트포민의 작용 방식을 파악하는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00microbiota6.jpg » 그림6. 메트포민의 구조와 시판되는 형태 : 메트포민은 바이구아나이드(biguanide) 계열에 속하는 약물로써 당뇨병 치료제로 가장 널리 처방되는 약입니다. 혈당량을 낮출 뿐 아니라 심혈관질환이나 암 발생을 억제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우선 적당한 농도로 메트포민을 투여하면 예쁜꼬마선충의 수명이 증가한다는 현상이 관찰됐습니다. 그런데 뒤이어 무균 상태의 밥이나 자외선으로 죽인 대장균과 함께 메트포민을 주면 예쁜꼬마선충의 수명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이 관찰됐습니다. 무균 상태의 밥을 먹이면 식이제한과 유사한 효과에 의해 수명이 증가하는데, 메트포민은 그 효과마저 상쇄시켜 버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메트포민이 예쁜꼬마선충에게는 오히려 독성 물질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뒤이은 실험에서는 대장균에게만 메트포민을 처리하여 배양한 뒤 약물이 전혀 없는 배지로 옮겨준 다음에 예쁜꼬마선충에게 먹였습니다. 이때에도 마찬가지로 예쁜꼬마선충의 수명이 증가했습니다. 이런 실험들을 종합해보면, 메트포민이 예쁜꼬마선충의 수명을 증가시키는 현상에는 살아 있는 세균의 대사 작용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추가적인 여러 가지 연구를 통해서, 메트포민은 세균의 엽산(folate) 대사를 저해하고 그 결과 단백질 합성에 필수적인 아미노산인 메티오닌의 생산을 감소시킨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예쁜꼬마선충도 스스로 약간의 메티오닌을 합성할 수 있기는 하지만 대장균이 제공하던 메티오닌이 감소하면 예쁜꼬마선충의 단백질 합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단백질 생산 속도가 늦추어진다는 것은 개체의 전반적인 에너지 이용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니 메트포민은 식이제한과 유사하게 예쁜꼬마선충의 자손 수를 감소시키고 생식 시기를 늦출 뿐 아니라 수명을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메트포민이 당뇨병 치료제로 널리 사용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 중에는 다양한 위장 장애와 엽산 감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 장내에 사는 미생물군도 메트포민의 영향을 받아 예쁜꼬마선충 내부의 대장균과 유사한 변화를 겪을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수명 증가와 같은 좋은 결과만이 뒤따른다면 좋겠지만, 메트포민에 대한 저항성의 차이에 따라 장내 미생물군의 조성이 망가져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있습니다. 장내세균불균형(Dysbiosis)이 비만, 염증성 장 질환(Inflammatory Bowel Disease), 당뇨 등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보고가 이미 있기 때문에, 미생물군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는 약물 복용에는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진화까지 함께하는 운명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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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유류에서 숙주와 미생물 간의 관계가 공생 관계인 것은 자명합니다. 숙주는 기생자에게 안전하고 영양분이 풍부한 거주 환경을 제공합니다. 또 면역계가 병원성을 가지는 세균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면 상대적으로 해가 없는 세균들이 널리 퍼질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처럼 동물의 소화기관 내부는 독특한 틈새 환경을 형성하여 일반적인 자연과는 다른 특별한 선택압을 줍니다.

대장균이 예쁜꼬마선충과의 상호작용에서 어떤 이점을 얻는지는 상대적으로 모호합니다. 한 가지 가설은 야만적인 대장균 가설입니다. 예쁜꼬마선충 장내의 대장균은 숙주와 같은 식탁에서 식사함으로써 영양분을 얻습니다. 그런데 예쁜꼬마선충의 먹이가 잘 부수어진 대장균이므로 장내 대장균은 그들의 친척이나 친구를 먹게 되는 셈입니다. 두 번째 가설은 숙주 택시 가설입니다. 숙주인 예쁜꼬마선충이 좋은 환경을 찾아 돌아다닐 때마다 대장균 또한 같은 곳을 여행하게 됩니다. 어떠한 사건으로 장 밖으로 탈출하게 되면 새로운 환경에서 군집을 형성할 기회를 얻을 것입니다. 마지막은 앞에서도 소개했던 역포식 관계 가설입니다. 초기에 먹이로 존재하던 대장균이 살아남아서 숙주보다 장수하면 숙주의 사체를 훌륭한 먹이로 삼을 수 있습니다.

숙주 내부의 미생물군들의 유전 정보의 양이 숙주의 것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사실은 동물과 식물에서 널리 보고됐습니다. 미생물군이 전생물체(Holobiont, 숙주와 내부의 미생물군을 통칭하여 이르는 개념)의 적응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여러 연구로 확인되자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의 로젠버그 교수는 ‘진화의 전유전체 이론(Hologenome theory of evolution)’을 주장하기에 이릅니다.

이 이론의 핵심은 전생물체가 가지는 모든 유전체가 하나의 컨소시엄을 형성하여 진화 과정에서 선택의 단위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미생물군은 전생물체의 적응도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반대로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전유전체에게 변이(variation)는 숙주 유전체의 변화일 수도 있지만, 미생물군 내부의 변화에 의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가정은 전생물체의 변이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고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숙주가 획득한 미생물 자체가 자손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관점을 취한다면, 이는 마치 획득 형질(미생물)이 유전된다는 의미이므로 다윈주의 틀 내에서 신-라마키즘으로 연결됩니다. 건강한 자손을 낳기 위해서는 배우자가 좋은 유전자를 가졌는지 뿐만 아니라 어떤 미생물군을 가졌는지 또한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 미생물군 수직 전달이 얼마나 정확하게 일어나는지는 논쟁거리입니다. 가장 중요한 장내 미생물이 얼마나 전달이 될 수 있을지, 아버지의 미생물을 전달하는 과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등 해결해야 할 요소가 남아 있습니다.

단순히 건강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미생물군을 잘 유지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노벨상 수상자가 직접 발효 요구르트의 광고에 등장하기도 하고, 헬리코박터균을 많이 먹는 것이 몸에 좋다는 웃지 못할 촌극까지 벌어지기도 합니다. 기술이 조금 더 발전한다면 유산균만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다양한 생화학 작용을 하는 세균들을 적극적으로 체내에서 키우려는 시도가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서두에서 그려본 가상적인 미래 사회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참고 문헌


Cabreiro F, Gems D. Worms need microbes too: microbiota, health and aging in Caenorhabditis elegans. EMBO Mol Med. 2013 Sep;5(9):1300-10. doi: 10.1002/emmm.201100972. Epub 2013 Aug 1.

Garsin DA, Villanueva JM, Begun J, Kim DH, Sifri CD, Calderwood SB, Ruvkun G, Ausubel FM. Long-lived C. elegans daf-2 mutants are resistant to bacterial pathogens. Science. 2003 Jun 20;300(5627):1921.

Houthoofd K, Braeckman BP, Lenaerts I, Brys K, De Vreese A, Van Eygen S, Vanfleteren JR. Axenic growth up-regulates mass-specific metabolic rate, stress resistance, and extends life span in Caenorhabditis elegans. Exp Gerontol. 2002 Dec;37(12):1371-8.

Rosenberg E, Zilber-Rosenberg I. Symbiosis and development: the hologenome concept. Birth Defects Res C Embryo Today. 2011 Mar;93(1):56-66. doi: 10.1002/bdrc.20196.

Wikoff WR, Anfora AT, Liu J, Schultz PG, Lesley SA, Peters EC, Siuzdak G. Metabolomics analysis reveals large effects of gut microflora on mammalian blood metabolites. Proc Natl Acad Sci  USA. 2009 Mar 10;106(10):3698-703. doi: 10.1073/pnas.0812874106. Epub 2009 Feb 20.

출처 : 성상현 서울대 생명과학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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