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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얼려도 되살아나는 세균

  • AD 최고관리자
  • 조회 2208
  • 2013.10.30 09:11
세균 또는 박테리아(bacteria)는 자기 자신을 둘로 나누고 또 나누는 방식으로 숫자를 불린다. 적절한 환경에 놓이면 하나의 박테리아가 금세 수백 수천 마리로 늘어난다.

▲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서 발견된 박테리아는 수십만 년 동안 냉동되어도 유전자 손상을 스스로 복구해서 되살아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Wikipedia
모든 생물은 노화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박테리아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전자 끝부분의 텔로미어(telomere)가 줄어들면서 노화가 진행되고 주변 조건에 의해 유전자가 손상되어 생명을 마치게 된다.

그 전에 몸을 둘로 나눠 노화된 유전자를 한 쪽에만 몰아주면 다른 쪽은 건강한 상태로 거듭날 수 있다. 이것이 박테리아가 오랫동안 살아남은 비결이다. 이 과정을 멈추게 하려면 극저온 상태에서 냉동을 시키면 된다.

냉동 기간이 장기간 지속되면 박테리아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구성하는 분자 자체가 노화되면서 유전자 손상을 입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십만 년 동안 얼음 속에 파묻혔던 박테리아도 에너지와 영양분만 충분히 공급된다면 얼마든지 되살아날 수 있다.

최근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학교 연구진이 박테리아의 ‘불로불사’ 비결에 한 발 더 다가섰다. 연구진은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서 발견한 박테리아(Psychrobacter arcticus 273-4)에 450그레이(Gy)의 전리방사선을 가했다. 자연 상태의 박테리아라면 22만 5천 년 동안 겪을 분량이다. 이후 505일 동안 영하 15도에서 보관했다. 그런데도 손상된 유전자를 무사히 복구시켜 되살아났다.

관련 기술을 발전시킨다면 화성처럼 극저온 상태에 있는 행성과 위성에서 생명체의 흔적을 찾아 되살리는 데도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연구결과는 학술지 ‘응용환경미생물학(Applied and Environmental Microbiology)’ 최근호에 게재되었다. 논문의 제목은 ‘영하 15도에서도 이중나선 손상 복구 가능(Double-strand DNA break repair at -15°C)’이다.

동식물의 체내를 비롯해 지구 어디에나 존재하는 박테리아

1676년 네덜란드 과학자 안톤 반 레웬후크(Anton van Leeuwenhoek)는 현미경을 직접 발명해서 최초로 박테리아를 관찰했다.

당시에는 기다란 모양의 세균이 주로 발견되었기 때문에 ‘막대기’ 또는 ‘지팡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박트론(baktron)에서 유래한 라틴어 박테리움(bacterium)이란 명칭이 붙었다. 박테리움의 복수형이 ‘박테리아'다.

박테리아는 크기가 1천분의1밀리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지구상 어디에나 살고 있다. 적도 인근의 뜨거운 지역에서도 남극과 북극 가까운 영구동토층과 빙하에서도 박테리아가 발견된다.

동물이나 식물은 박테리아의 도움을 받아 살아간다. 동물의 몸 속에서는 소화를 돕고 식물의 체내에서는 분해를 돕는 식으로 공생하는 것이다. 박테리아가 없으면 동식물도 존재할 수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 몸속에는 500종이 넘는 박테리아 100조 마리가 살며 음식의 소화, 칼로리 추출, 면역체계 보조, 비타민 생산 등 각종 신진대사를 담당한다. 2011년에는 인체의 장내에 서식하는 이들 박테리아 군집의 종류에 따라 사람의 체질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사실이 발견되어 큰 관심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박테리아는 질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충치나 위궤양 같은 작은 질병에서부터 결핵, 콜레라, 장티푸스 등 심각한 전염성 질환까지 대부분 질병의 뒤에는 박테리아가 숨어 있다. 중세시대 유럽을 휩쓴 흑사병과 테러 무기로 쓰이는 탄저균도 모두 박테리아가 핵심이다.

박테리아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열을 가하는 것이다. 섭씨 180도의 뜨겁고 건조한 공기에 1시간 정도 노출되면 거의 모든 박테리아가 박멸된다. 압력을 가하거나 가스를 살포하고 자외선이나 방사선을 쬐는 방법으로도 세균을 없앨 수 있다.

냉동시키는 방법으로는 박테리아의 활동을 잠깐 멈출 수만 있을 뿐 아예 없애지는 못한다. 극저온 상태에서도 쉽게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요즘 기술로는 100만 년 가까운 빙하 속에서 채취한 박테리아도 문제 없이 되살릴 수 있다.

브렌트 크리스너(Brent Christner) 루이지애나주립대 생물학과 교수 연구진은 중국 서부 티베트 고원의 75만 년이나 된 빙하 속에서 박테리아를 채취해 되살린 적도 있다. 비밀은 ‘DNA 재생’이다.

아무도 없는 외계 행성에서 생명체 되살릴 수도

박테리아는 거대분자로 이루어져 있어 노화를 피해갈 수 없다. 냉동 기간이 장시간 지속되면 DNA가 손상되면서 노화가 가속화된다. 그중에서 이중나선 손상(DSB)이 가장 치명적이다.

박테리아가 둘로 갈라질 때는 일반 생명체의 생식과정에서처럼 염색체 속 DNA가 끊어진다. 세포 분열 후에는 DNA가 재결합되어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러나 주변 환경이 가혹하면 DNA의 이중나선이 손상되어 다시 붙지 못한다. 이중나선 손상이 반복되면 재생 불가능할 정도로 DNA가 망가지게 되고 결국 박테리아도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다.

이중나선 손상을 겪은 박테리아도 염색체 분열 과정에서 DNA가 제자리를 찾아가게 한다면 이론적으로는 얼마든지 되살릴 수 있다. 크리스너 교수 연구진의 전문 분야다. DNA 재생과 복구의 메커니즘을 알아내기 위해 연구진은 더욱 가혹한 조건 속에 박테리아를 노출시켜왔다.

최근에는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서 채취한 박테리아(Psychrobacter arcticus 273-4)에 450그레이의 전리방사선을 쬐어 인위적으로 나이가 들게 했다. 자연 상태라면 22만5천 년에 해당되는 분량이다. 참고로 1그레이는 1킬로그램의 물체가 1줄(J)의 에너지를 흡수했을 때의 방사선 양을 가리킨다.

▲ 전리방사선의 노출량이 많아질수록 박테리아는 자연상태의 수만~수십만 년에 해당하는 나이를 먹게 되며 생존가능성도 그만큼 떨어지는 것이 정상이다.  ⓒApplied and Environmental Microbiology
전리방사선을 쬔 박테리아는 DNA가 찢어져 파편처럼 부서지기 시작했다. 이중나선 손상을 입은 회수는 한 염색체당 평균 16건에 달했다. 이후 505일 동안 영하 15도 정도에서 배양작업을 진행했다. 시베리아 영구동토층과 화성 북극 지역의 평균온도에 해당하는 조건이다.

이중나선 손상이 너무 심해서 박테리아의 염색체는 알갱이처럼 부서졌다. 그러나 박테리아의 재생 기능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중나선 손상이 복구되는 속도와 DNA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속도도 일반 박테리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크리스너 교수는 루이지애나주립대 발표자료를 통해 “박테리아 스스로 이중나선 손상을 복구시키고 DNA를 재생하며 우연에 의한 현상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또한 “지구의 영구동토층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화성의 극지방을 비롯한 태양계 행성과 위성의 땅 속에서도 충분히 생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수십만 년 전에 생명체가 사라진 것으로 보이는 외계 별에서도 박테리아 같은 형태의 생명체를 되살릴 수 있다는 의미다. 화성에서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는 데에도 유용하게 쓰일 전망이다.

참고로 이번 실험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지원했다.
 
출처 : 임동욱 객원기자 | im.dong.uk@gmail.com / 저작권자 2013.10.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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