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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열쇠가 될 초대형 바이러스

  • AD 최고관리자
  • 조회 2163
  • 2013.11.12 09:29
▲ 판도라바이러스  ⓒAix-Marseille univ.
10년 전 프랑스의 과학자들은 기존의 바이러스와는 사뭇 다른 기묘한 바이러스를 칠레 해상에서 발견했다. 일반적인 바이러스보다 10~20배나 큰 엄청난 외형을 가진 이 바이러스에게, 당시 과학자들은 ‘메가바이러스’(Megavirus)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당시 메가바이러스를 발견했던 과학자들은 이보다 더 큰 바이러스는 발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달 지구의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칠레와 호주에서 이들 바이러스보다 더 큰 바이러스가 각각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숙주를 능가하는 초대형 바이러스의 등장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사이언스데일리(Sciencedaily)는 바이러스와 세포 생물의 진화 관계를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초대형 바이러스가 최근 칠레 해안가와 호주의 멜버른에서 발견되었다고 보도하면서, 이들에게 ‘판도라바이러스’(Pandoravirus)라는 이름이 주어졌다고 밝혔다.

칠레에서 발견된 판도라바이러스 살리누스(Pandoravirus salinus)는 몸 길이가 1마이크로미터(μm)이고, 호주에서 발견된 판도라바이러스 둘치스(Pandoravirus dulcis)는 0.5마이크로미터(μm)로서 약 2천500개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플루엔자나 AIDS 바이러스의 유전자 수가 10개 남짓인 사실과 비교하면 판도라바이러스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발견 당시 과학자들은 바이러스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이 생물체를 ‘새로운 생명체(NLF, New Life Form)’라고 불렀다.

그러나 실험을 통해 판도라바이러스가 바이러스만의 본질적 특성인 리보솜을 갖고 있지 않고, 에너지를 생성하지 않으며 분열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바이러스로서의 정체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바이러스의 특성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바이러스는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위치하는 감염성 병원체로, 스스로는 생명활동과 증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숙주 세포에 의지해서 증식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 Jean Michel Claverie  ⓒAix-Marseille univ.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숙주세포에 달라붙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마이크로미터에서부터 나노미터 단위의 미세한 크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외에도 RNA와 DNA 같은 극소수의 유전 물질과 껍데기, 그리고 숙주세포에 달라붙을 수 있는 단백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바이러스가 단순하면서도 미세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 이유에는 나름의 생존전략이 기반이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바이러스 입장에 볼 때 어차피 자신의 구조가 기생 유전자와 껍데기로 구성된 만큼 나머지 불필요한 것들은 모두 버리는 구조를 취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이들 판도라바이러스는 이미 발견된 다른 거대 바이러스들과는 달리 합성하는 단백질의 7%만이 이미 밝혀진 바이러스나 미생물들의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져, 사실상 공통점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프랑스 엑스마르세이유 대학의 진화생물학자인 쟝 미셀 클라베리 (Jean Michel Claverie) 박사와 샹탈 아버젤(Chantal Abergel) 박사는 “거대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것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흡사하다”며 “끊임없이 ‘일치하지 않는 유전자들은 무엇을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자신들에게 던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의 바이러스 학자인 크리스텔 데누 (Christelle Desnues) 박사는 “거대 바이러스가 기존의 바이러스들과 유전자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것은, 아직 바이러스의 다양성이 대부분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바이러스의 진화를 설명해 줄 것으로 기대

작은 박테리아에 근접한 크기를 자랑하는 판도라바이러스가 어째서 거대한 몸집과 많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지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거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거대한 몸집 덕분에 일반적인 바이러스들처럼 박테리아를 숙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대형 아메바를 숙주로 삼는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전자 현미경을 통해서 거대 바이러스가 아메바를 숙주로 삼아서 이들의 단백질을 비우고, DNA를 이용하여 숙주세포의 핵을 조정하면서 수 백 개의 새로운 바이러스 입자를 생산하고 나중에는 떨어져 나오게 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파악했다.

클라베리 박사는 “이 두 신종 바이러스가 1만 5천㎞나 떨어진 상이한 지역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은, 이들이 아직까지 발견되지만 않았을 뿐 실제로는 의외로 많이 분포되어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라며 “이 같은 사실은 바이러스가 알려진 세포의 인공물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게 만드는 증거”라고 제시했다.

▲ 미생물과 바이러스 간 크기 비교  ⓒNewscientist

이 외에도 연구진은 거대 바이러스 중 판도라바이러스 살리누스의 프로테옴(Proteome)을 분석을 통해, 바이러스의 단백질들이 게놈 염기서열의 예측치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같은 결과는 판도라바이러스가 지구상의 모든 생물과 보편적인 유전자 암호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현재 연구진은 알려지지 않은 유전자의 특징을 밝히고, 이들이 부호화하는 단백질을 조사하여 판도라바이러스의 기원을 찾고 있는 중이다. 이들은 이 거대 바이러스가 세포에서 진화했을 것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이들의 주장이 맞다면 판도라바이러스의 조상은 초기 박테리아나 진핵생물과는 매우 다른 종류일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에 대해 아버젤 박사는 “원시의 세포들 중 일부는 현대적인 생물체를 만들었으며, 다른 것들은 기생하면서 바이러스로 진화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버젤 박사는 “판도라바이러스는 생물의 진화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증거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 거대 바이러스가 어쩌면 세포 생물과 바이러스 사이의 진화적 연결 고리를 설명해 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출처 : 저작권자 2013.11.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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