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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스의 뇌, 린네의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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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1.18 09:04
지난 4월 학술지 ‘브레인(뇌)’에는 다소 엽기적인 논문이 실렸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대뇌피질: 미발표 사진들에 대한 기술과 예비분석’이라는 제목으로 24쪽이나 된다. 그런데 과학계의 영원한 최고 스타 아인슈타인의 벌거벗은 뇌 사진들을 보는 게 왠지 불편했다. 아무튼 저자들은(미국 플로리다주립대의 인류학자들) 집요하게 사진을 분석해 의미(뇌 구조와 천재성의 관계)를 도출해냈다.

그런데 최근 같은 학술지에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독일 괴팅겐 막스플랑크생물리화학연구소 레나트 슈바이쳐 박사팀의 논문으로 지난 4월 아인슈타인의 뇌 분석 논문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우리는 우리의 작업이 아인슈타인의 뇌를 보존된 다른 천재들의 뇌와 비교하는데 관심이 있는 연구자들에게 쓸모가 있기를 희망한다. 즉 독일의 수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1777-1855)….”

▲ 19세기 독일의 해부학자 바그너는 사망한 천재들의 뇌를 수집했는데 의사 푹스의 뇌(왼쪽)와 수학자 가우스의 뇌(오른쪽)도 포함됐다. 그는 푹스의 좌측 대뇌피질에서 전두엽과 두정엽 사이의 주름(노란색 부분)이 특이한 형태라고 기록했는데, 이를 토대로 두 사람의 뇌가 뒤바뀐 채 보관돼 왔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그동안 푹스의 뇌라고 알려진 견본을 MRI로 분석한 뇌(가운데)의 주름패턴이 바그너가 제작한 가우스의 뇌 그림과 같음을 알 수 있다.  ⓒ막스플랑크연구소

죽은 자의 시신을 훼손하는데 거부감이 있는 동양의 정서와는 달리 서구에서는 이런 일이 흔한가 보다. 1955년 사망한 아인슈타인보다 꼭 100년 전 사망한 수학 역사에서 ‘3대 수학자’로 추앙받고 있는 가우스의 뇌 역시 지금까지 보존돼 있다. 가우스의 친구이자 저명한 해부학자였던 루롤프 바그너는 천재들의 뇌가 어떻게 다른가에 관심이 많았고 결국 생전에 지적 능력이 뛰어났던 사람들의 뇌를 수집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자기 친구인 가우스의 뇌였다.

뇌 비교 연구하다 바뀐 듯

바그너는 가우스의 뇌를 분석한 논문 두 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 뒤 150여 년 동안 천재의 뇌에 관심이 있는 과학자들은 종종 가우스의 뇌를 찾아 분석을 시도하고는 했다. 슈바이처 박사 역시 4월 논문을 읽고 인근 괴팅겐대에 보관돼 있는 가우스의 뇌를 자세히 조사해봤다. 그런데 왼쪽 대뇌피질에서 희귀한 해부학적 특징을 발견했다. 즉 전두엽과 두정엽 사이의 골이 연결돼 있었던 것.

가우스의 뇌가 특이했다고 생각하며 지나치는 순간 슈바이처 박사는 문득 같은 특징을 갖는 뇌에 대한 논문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바로 바그너가 가우스와 동시대인이었던 의사 콘라드 하인리히 푹스의 뇌를 묘사한 것과 일치했던 것이다. 이에 의구심을 느낀 슈바이처 박사는 본격적으로 조사에 들어갔고 놀랍게도 가우스의 뇌와 푹스의 뇌가 바뀌었음을 확인했다. 어떻게 이런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는지는 밝히지 못했지만 아마도 바그너의 아들 토머스가 1864년 두 사람의 뇌를 비교하는 연구로 박사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아무튼 이 이후에 가우스의 뇌를 조사해 쓴 논문은 모두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할 운명으로 전락한 셈이다.

아프리카코끼리를 보지 못했던 린네

학술지 ‘네이처’ 11월 7일자에는 가우스의 뇌와 비슷한 사례를 다룬 흥미로운 뉴스가 실렸다. 분류학의 아버지 카를 린네가 아시아코끼리의 학명 엘레파스 막시무스(Elephas maximus)를 부여하면서 기준표본으로 삼았던 코끼리 태아가 사실은 아프리카코끼리였다는 게 최근 밝혀진 것. 참고로 아프리카코끼리는 학명이 록소돈타 아프리카나(Loxodonta africana)로 둘은 서로 다른 종이다. 분류학의 아버지가 어쩌다 이런 실수를 저질렀을까. ‘네이처’ 본지에는 지면상 이 사건을 간략히 다뤘지만, 홈페이지에서는 이에 대한 비하인드스토리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 1753년 스웨덴 왕가가 사들여 보관해오고 있는 코끼리태아 견본. 분류학의 아버지 카를 린네는 이 견본을 토대로 1758년 아시아코끼리의 학명을 지었다.  ⓒ스웨덴자연사박물관
1753년 봄 린네는 알코올에 담긴 코끼리 태아 견본을 본 뒤 스웨덴 아돌프 프레데릭 스웨덴 국왕을 부추겨 견본을 사들이는 데 성공한다. 린네는 1735년 훗날 그를 분류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할 저서 ‘자연의 체계(Systema Naturae)’를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이명법, 즉 학명을 속명과 종소명으로 나타내는 방식으로 생명체를 분류하는 체계를 사용했다. 그 뒤 수년 마다 개정하면서 새로운 종들을 추가했는데, 린네는 1758년 개정판에 이 태아 견본을 바탕으로 아시아코끼리의 학명을 정하고 수록했다.

그런데 1778년 린네가 사망하고 얼마 안 있어 생물학자들은 아프리카에 사는 코끼리가 아시아코끼리와는 다른 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린네 역시 아프리카에도 코끼리가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지는 못했다. 아무튼 아프리카코끼리는 엘레파스 아프리카누스라는 학명을 얻게 되고 그 뒤 아시아코끼리와의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는 게 밝혀지면서 아예 속명이 록소독타로 바뀌게 된 것.

한편 코끼리 태아 견본은 스웨덴자연사박물관에 보관됐는데 19세기 들어서면서부터 ‘이게 아프리카코끼리가 아닐까?’하는 의심을 받게 된다. 아프리카코끼리는 아시아코끼리에 비해 귀가 더 큰데 이 태아코끼리의 귀는 아무리 봐도 아프리카코끼리의 귀로 보였던 것. 하지만 누구도 대놓고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은 채 200여년이 흘렀다.

▲ 코끼리태아 견본은 네덜란드의 부유한 아마추어 박물학자 알베르투스 세바가 네덜란드 서인도회사에서 사들인 것인데, 애초에 어디서 얻은 것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1736년 세바가 죽은 뒤 견본은 경매로 팔렸다. 세바가 그린 코끼리태아 세밀화.  ⓒ알베르투스 세바

세 사람의 집념이 밝힌 진실

그런데 1999년 영국 런던자연사박물관의 포유동물학예사인 앤시어 젠트리 박사가 우연히 이 코끼리 태아 견본을 보게 된다. 젠트리 박사 역시 의심이 들었고 2006년 마침내 견본의 DNA를 분석해보기로 했다. 아시아코끼리와 아프리카코끼리 사이에서 염기서열이 다른 부분을 확인해보면 답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알코올에 250년 넘게 담겨있다 보니 DNA가 심하게 손상돼 분석할 수 없는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DNA 분석에 참여했던 덴마크 코펜하겐대 탐 길버트 교수는 최후의 방법으로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을 분석해보기로 하고 이 분야의 전문가인 엔리코 카펠리니 박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단백질은 DNA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한 분자이기 때문이다. 당시 단백질 분석을 통해 곡물의 작물의 과정을 밝히기 위해 길버트 교수 실험실에 와 있던 카렐리니 박사는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지만 연구에 참여했고 마침내 헤모글로빈 복합체에 참여하는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을 분석해 태아 견본이 아프리카코끼리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 17세기 네덜란드 빛의 화가 렘브란트가 그린 아시아코끼리 한스켄의 모습. 코끼리태아가 아프리카코끼리로 밝혀지면서, 피렌체자연사박물관에 있는 한스켄의 골격이 새로운 아시아코끼리 기준표본으로 등극할 전망이다.  ⓒ엔리코 카펠리니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다. 이제 아시아코끼리의 기준표본이 없다는 것. 그런데 놀랍게도 카렐리니 박사가 ‘결자해지(結者解之)’를 했다고 한다. 어느새 코끼리 연구에 푹 빠진 카렐리니 박사는 이것저것 자료를 뒤져보다가 17세기 영국의 아마추어 박물학자 존 레이가 피렌체공국 궁전에서 본 코끼리 골격에 대해 묘사한 글(1693년 발표)을 접하게 된다. 우연히도 카렐리니는 피렌체에서 박사학위를 했고 당시 피렌체대학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에서 코끼리 골격 견본을 본 기억이 났다.

레이가 묘사한 골격이 그 견본이 아닐까 생각한 카렐리니 박사의 추정은 사실로 드러났다. 1630년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네덜란드 왕가에 선물한 아시아코끼리로 ‘한스켄(Hansken)’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줬다. 당시 유명 화가였던 렘브란트가 그린 스케치도 남아있다. 한스켄에 대한 흥미가 시들해진 왕가는 코끼리를 서커스단에 팔았고 유럽을 전전하던 한스켄이 1655년 11월 9일 죽자 골격이 추려져 전시돼 왔던 것.

젠트리 박사, 길버트 교수, 카펠리니 박사의 만남이 결실을 맺은 논문은 학술지 ‘린네학회동물학저널’ 11월 4일자(온라인판)에 실렸다. 이들은 논문에서 현재 피렌체의 국립자연사박물관에 있는 골격의 특징과 DNA분석데이터가 아시아코끼리임을 증명하기 때문에 이를 새로운 기준표본으로 삼을 것을 제안했다.
 
출처 : 저작권자 2013.11.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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