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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물리학자가 보는 이공계 위기의 본질 by min

  • AD 최고관리자
  • 조회 1370
  • 2013.12.23 17:16

“이공계 위기”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제언

먼저 제 소개를 해야겠군요. 저는 1971년 생으로, 1990년에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했습니다. 학부 5년 다니는 동안은 열심히 데모만 하다가 동 대학원에 진학하여 지난 2001년 박사 학위를 받고 2001년 3월부터 현재까지 연세대학교 물리학과에서 BK21 사업단의 박사 후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물리학자입니다. 아직은 내세울만한 업적도 없고 박봉(연봉 1400)에 시달리지만 나름대로 제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근래에 인구에 회자되는 이른바 “이공계의 위기”에 저 역시 큰 관심과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나 각종 언론에서 제기하는 위기의 진단과 해결책이 뭔가 본질을 비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자연과학대학, 그리고 물리학과, 그것도 입자물리 이론이라고 하는 매우 좁은 분야에서 연구하는 사람이라, 다른 분야에 대해 제 분야만큼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특히, 공과대학의 세세한 형편이나 분위기는 전혀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그리 영민치 못한 관계로 제 생각이 제 주변의 매우 협소한 고민거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걱정도 사실 저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정부에서 “이공계” 종사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것도 좋으리라는 판단에 제 짧은 생각을 글로 옮깁니다.

저는 많은 중요한 통계적 수치들을 잘 알지 못합니다. 제가 본문에 간혹 인용하는 숫자들도 혹 잘못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 이 점 미리 유념해 주셨으면 합니다. 편의상 경어가 아닌 평어로 쓰게 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1. 이공계의 위기인가, 공대의 위기인가?

최근의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이공계의 위기의 “증상”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 고등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한다.

- 이공계 대학생들은 대학에서 딴짓---사시나 행시, 아니면 수능 다시 봐서 의·치·한(의대·치의대·한의대) 등---을 많이 한다.

- 대학생들이 졸업해도 취직이 잘 안된다.

- 어렵게 취직을 해도 돈을 많이 못 번다.

- 저임금에 만족하고 살려고 해도 사회적 박대와 국가적 냉대가 심하다.

- 그나마 직장에서 쫓겨나는 것도 점점 빨라진다 (원래 빨랐다).

- 이 모든 현상을 듣고 보고 자란 고등학생들이 더더욱 이공계를 기피한다.

- 이로써 이공계 위기(혹은 기피)의 악순환이 완성된다.

각종 매체나 인터넷 게시판 등에 떠도는 이공계 위기와 관련된 내용은 위 싸이클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공계 당사자들이 제기하는 문제들도 위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좀 더 축약해서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리가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서 많은 일들을 했는데 왜 대우가 이 모양이냐”로 요약된다.

그런데, 나는 이런 얘기들을 들을 때마다, 왜 내가 고민하는 것은 저기 없을까, 왜 다른 업계 종사자들 얘기처럼 들릴까, 난 이공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많이 했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이공계생들이 졸업 후 회사에 취직하거나 창업하는 반면 나는 계속 학교에 남아 있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내 고민이 깊어질수록 나는 위의 “악순환 공식”이 그저 사태의 겉모습, 극히 일부 드러난 부분만을 표현할 뿐이라고 결론지었다. 이건 제대로 된 진단이 아닐 뿐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해결책을 내어 올 수 없다.

대부분의 이공계생은 공대생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공계생은 회사에 취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대생과 그 중의 다수인 기업체 엔지니어의 “처우개선”이 “이공계 위기”의 처음과 끝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기껏해야 “공대생의 위기”에 불과하다. 물리학자로서의 나의 고민, 나의 위기, 나와 내 동료들의 암담함은 그 뻔한 레퍼토리 --- 열악한 환경, 냉대와 무시 등 --- 로 담아 내기엔 뭔가 부족하다.

이공계의 위기는 결코 공대의 위기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공대의 위기조차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이공계의 위기는 또한 이공계“만”의 위기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2. 패러다임의 변화, 이공계의 위기의 본질은 학문의 위기이다.


이 글 전체를 관통하는 내 주장의 핵심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공계 위기의 본질은 학문의 위기의 전면화이다.”

나는 이 글에서 내 주장을 논증하려는 생각은 없다. 그보다는, 우리가 이공계 위기를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함으로써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데에 보탬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학문의 위기를 들고 나온 중요한 계기는, 현재 많은 사람들이 제시하는 이공계 위기의 현실이나 해결책들이 지극히 “경제논리”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공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학문과 경제를 분리해야 한다.

이 말이, 학문과 경제가 아무런 상호작용 없이 각자 따로따로 놀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건 아마 다들 잘 이해하리라고 본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학문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학문 그 자체 내의 내적 논리, 다른 그 어떤 분야의 논리가 아닌 학문 그 자체의 발전 매커니즘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 우리나라 '이공계'가 혁혁한 공을 세운 건 사실이고 또한 내세우고 싶은 치적이 많긴 하겠지만, 오히려 이런 주장들이 나중에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가 있다. 왜 학문의 존재 이유를 국가의 경제발전에서만 찾아야 하는 건가?

한 나라의 학문의 발전과 융성은 다른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다른 그 무엇과도 비교되거나 대체될 수 없는 고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왔던 지적 발전의 맥을 도도히 이어가는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전 인류의 보편적 이익을 위해 봉사하게 되는 숭고한 뜻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치들이 한낱 돈 몇 푼의 논리에 빗대어 얘기되어서야 학문이 경제의 노예밖에 더 되겠나.

이공계인들의 푸념을 단순화하면, 우리가 국가 경제 발전에 크나큰 도움을 줬는데 왜 지금 우리가 이렇게 푸대접을 받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또 한편으로 보자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능력이 결국 돈을 얼마나 벌어 들이느냐로 가치매김해 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리학자인 나로서도 이와 관련해 할 말은 많다. 대한민국 대표 상품인 반도체 개발에 고체 물리학이 기여한 바는 가히 절대적이다. 인터넷을 처음 개발한 곳이 유럽 공동 입자 가속기 그룹 (CERN)이고, 전기를 발견하여 모든 국민들로 하여금 “사용료”를 내게 한 장본인도 영국의 물리학자 패러데이였다. 그러나, 예컨대 전자기 유도의 발견의 가치가, 지금까지 인류가 전기 사용료로 지불해 온 액수로만 매겨질 수 있을까.

돈벌이가 지상명령인 기업체에서는 이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체를 벗어난 다른 곳 (특히 대학) 에서까지 이런 경제논리가 팽배해지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다. 당장 돈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이공계인들은 나가 죽으란 말인가. 경제논리는 몇몇 잘 나가는 공대 출신 엔지니어들이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좀 더 많은 돈을 얻어내기 위한 논리일 뿐이다. 전체 이공계 내에서 상대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준을 내세워 사회적 가치판단을 내리게 하여 결국 자기가 속한 그룹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것은 집단 이기주의다.

경제논리는 당연하게도 기업에서 대환영이다. 그들은 고급 인력과 고급 기술과 고급 지식을 아주 값싸게 얻을 수 있다. 돈 안 되는 이공계 분야를 마치 손 안 대고 코 풀 듯 이공계 자체의 몸값 높이기 경쟁을 통해, 국가 “경제발전” 정책에 의해, 그리고 전 사회적인 돈벌이 지상주의에 의해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재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 논리에 매몰되면 결국 이공계 위기의 문제는 밥그릇 싸움이나 집단 이기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 '이공계'라는 말로 뭉뚱그려지면서, '과학기술자'들은 대부분 기업이나 국가의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혹은 경제발전의 원천기술을 만들어내고 그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들 쯤으로 인식되는 것 또한 경제논리가 빚어낸 비극이다. 그런 '이공계' '과학기술자' 속에서 나 같은 입자물리학자가, 남극 세종기지의 대원들이 설 자리는 없다.

이공계의 위기가 이렇게 전면화되기 몇 년 전인 1995년 경 주요 대학에서 학부제가 실시되며 많은 대학 교수들은 우리 나라 기초 학문의 위기를 경고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5년쯤 전에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나돌았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지금 이공계의 위기는 1990년대에 줄기차게 경고되었던 이른바 “학문의 위기”의 완결판인 셈이다.

이공계 문제를 경제논리가 아닌 학문의 논리로 바라봐야만 이공계인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이나 지식이 온전하게 평가받을 수 있다. 학문적 성과는 그 자체로서 고유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정부나 언론 뿐만 아니라 이공계인들조차 자신의 존재 근거를 “경제발전”에서 찾았었다. 이런 관점은 근본적으로 기업 중심적이기 때문에 이공계 자체의 발전 논리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공계가 정말 사회에서 대접받으려면 지금처럼 이공계가 경제논리 앞에서 경쟁해서는 안 된다. 그 반대로, 사회와 기업에서 “모셔 가도록” 하려면 이공계 스스로의 존재 근거와 자신만의 가치를 살려야 한다. 즉, 기업체들이 경쟁하도록 구조를 바꿔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에서부터 이공계를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 있는 학문으로 바라봐야 한다.

정부의 시선이 기업에만 집중되어 있는 이상 이공계 위기에 대한 의미 있는 대책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기껏해야 이공계생 장학금 지급이나 고위 공직자 쿼터제 등의 땜빵책 뿐이다.


3. 학문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볼 때, 학문이 융성하지 않고서 한 나라나 세력이 융성했던 적이 있었던가 자문해 보면 그 대답은 지극히 부정적이다. 학문이 살아나야, 학자들이 대접받아야 나라에 미래가 있다는 그 진부한 말을 나는 이공계 위기에 대한 근본대책, 가장 확실하면서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우리 나라의 물리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나라의 인문학이 융성해야 된다고 확신한다. 왜 그런가? 인문학이야말로 모든 학문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발전하고 융성하여 학자들이 넘쳐나고 대중화되어 있다면 그 사회는 적어도 “상식”이 통하는 사회일 것이다. 목소리의 크기보다는 이성과 토론이 지배하고 다양한 가치들이 그 존재의의를 서로 인정받으면서 상호침투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는 그런 사회 말이다. 이런 사회풍토 속에서라야만 그 어떤 다른 학문도 찬란한 꽃을 피울 수 있다. 물리학이나 여타의 공학도 이런 비탕 위에서 제자리를 찾아 발전할 수 있다. 흔히 말하기를, 우리 나라 학생들이 공부는 잘하는데 창의적인 연구는 약하다고들 한다. 그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인문학적 풍토의 척박함이다.

이렇게 인문학과 기초과학이 튼튼해야 학자들이 대접받는 사회가 된다. 아니, 정부가 나서서 기초학문 하는 학자들을 중심에 놓고 국가 정책을 펴야 학문이 발전한다. 그래야, 기업체에서 공학자, 물리학자를 “우습게” 혹은 “싸게” 보지 못한다. 지금 우리 나라의 전반적인 국가 정책은 정반대이다. 국가와 정부 관료들이 먼저 나서서 학자들을 “우습게”, 그리고 “싸구려” 취급한다. 어떻게 하면 대기업들에게 고급 인력을 값싸게 공급할 것인가만 생각한다. 이래서는 학문이 죽는다. 아니, 이미 죽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실, 이공계의 위기도 문제이지만 우리 나라 인문학의 위기, 혹은 사망선고가 훨씬 더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요즘 누가 인문대 대학원 진학해서 공부하려고 하겠나. 교수도 태부족이고 병역 특혜도 없다.

서울대에 가면 규장각이라고 있다. 주로 고문서들 보관하고 있는데, 도대체 이 속에 어떤 문서들이 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들었다. 박사급 인력을 몇 명만 투입하면 값진 논문들 쏟아질 판이라는데, 이걸 못할 정도로 고급 인력이 부족하다. 게다가, 1년에 몇 억이면 아주 훌륭하게 자료들을 보관할 수 있는데도 그 몇 푼 안 되는 설비비가 없어서 자료들이 먼지 뒤집어 쓰고 썩어 간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나라의 인문학 수준이 이 모양이니 프랑스에서 이걸 트집 잡아 외규장각 도서 못 돌려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도대체가, 퇴계와 율곡을 연구하는 학자들과 연구소가 일본에 몇 배나 더 많은 현실에서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얘기한다는 것은 너무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중국은 이른바 동북공정을 10년도 넘게 준비해 왔는데, 우리는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까 고구려를 공부하니 어쩌니 난리 법석이다.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이 땅의 인문학이 얼마나 피폐해 있는지 일일이 경우를 다 세기도 힘들다.

오랜 군사 독재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편법과 술수, 반칙, 적당주의, 지역주의, 권악징선 등등이었다. 이런 폐습들이 이제는 우리 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로 발목을 잡고 있다. 원칙을 세우고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귀찮거나 번거롭다거나 바보같은 짓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최소한의 상식이 통하는 공동체로 만들어 나가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 “기본”에 대한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서 선진국 진입이나 소득 2만불 시대를 말할 수는 없다. 지난 국민의 정부가 기본이 바로 선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 것도 아마 이런 맥락이었으리라.

기본이 바로 서고 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로 해야 할 일들이 많겠지만, 그 사회의 기초학문, 특히 인문학을 제대로 세워 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흔히 얘기하는 “국민들 의식의 변화”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한 사회의 인문학의 성숙도와 결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여태껏 우리 나라 정부가 국가적인 사업으로 학문을 진흥하려고 한 정책을 잘 알지 못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국가의 기틀을 잡고 태평성대를 이룬 시대에는 빠짐없이 학문장려책이 중요 국책사업으로 들어가 있다. 이 땅에 공화국 정부가 들어선 지 무려 반 세기가 훨씬 지났건만 아직 제대로 된 국책 사업으로서의 학문진흥책이 없다는 것은 비극이다 (군사 독재가 30년 이상 지속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긴 하지만··· 어쨌든···).

인문학이 무너진다는 얘기가 나온 지 벌써 10여 년이 지났다. 당시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학자들의 경고가 이제는 전 사회를 들썩이게 하는 이공계 위기로 다가왔다. 한두 해 동안에 이공계 위기가 찾아온 게 아니라 우리 나라 전반적인 학문의 위기가 말기암 시기까지 왔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만큼 그 처방도 담대하고 근본적이어야 한다.


4. 문제는 돈이 아니라 MIND이다.

우리나라의 기초학문이 튼실하지 못한 이유를 흔히 여유롭지 못한 주머니 사정으로 돌리곤 한다. 무한 경쟁의 시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기술력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일류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의 생존전략이라는 공식이 상식이 된 지 오래다.

당장 몇년 안에 가시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세계에서 도태되고 마는 냉엄한 현실 속에서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 효과를 볼 수 있는 기초 학문에 “한가하게” 투자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런데, 정말 우리 나라에 돈이 없어서 이 땅의 기초 학문이 아사 직전인 것일까.

나는 무엇보다 국가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관료들의 마인드를 문제 삼고 싶다. 아무리 돈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 나라는 세계 13대 경제 대국이다. 돈이 없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예컨대, 제일은행이 유동성 위기를 겪는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쏟아 부은 공적자금이 무려 30조가 넘는다. IMF 이후 금융권에 이런 식으로 들어간 돈이 내가 들은 것만 200조 가까이 되고 그 중 60% 이상이 회수 불능이라고 한다.

경제 논리에서 따져 보자면 이렇게 공적 자금을 붇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논란도 많을 것이다. 그 옳고 그름을 떠나, 적어도 우리 나라 재경부 관료들은 자기들 생각에 은행 하나가 쓰러지면 국가 경제가 결단날 것이라고 판단되는 그 즉시 수십 조원을 동원한다. 그 돈의 원금조차 제대로 회수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도 그 많은 돈을 끌어 댄다. 그만큼 은행 하나의 흥망성쇠가 국가 존망과 직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것은, 대학이 망해가고 중고등학교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는데,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재경부가 언제 수십 아니 수 조 원이라도 긴급 투입한 적이 있었나 라는 것이다. 학문이 망해 간다고 아우성친 것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니건만 국가 인재를 길러내는 시스템에 큰 문제가 생겼는데도 그게 어찌 부실은행 하나의 존망보다도 못할 수 있단 말인지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결국, 우리나라 곳간 열쇠를 쥐고 있는 재경부 나으리들은 적어도 학문의 중요성, 대학이 쓰러져 가고 있는 상황의 심각성, 그것이 국가의 존망에 곧바로 직결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전혀 체감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학문에 관한 마인드가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디 이 뿐이랴.

정부에서는 선뜻 큰 돈을 들여서, 아니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어서 학자들과 연구소와 대학들을 위해 장기적인 정책을 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학문이 융성해지려면 갖가지 제도와 시설과 사회 시스템이 잘 맞물려야 하기 때문에 이 또한 사회의 중요한 인프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인재 양성 인프라가 거의 전무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내실 있게 구축될 전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회 간접자본의 경우와는 비교도 안된다.

단군 이래 최대 역사였던 인천국제공항을 볼까. 여기 들어간 돈이 약 5조원(?)이다. 애초에 인천 앞바다에 바다를 메워 거대한 허브공항을 건설한다는 계획 자체에 반대도 많았다. 건설하는 동안에는 내내 부실공사 시비와 경제성이 의심받았다. 인천공항은 아직 적자다.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중요한 국책 사업이라며 그대로 밀고 나갔다. 성공 가능성이 100%여서가 아니었다. 신공항의 존재가 향후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SOC 중의 하나라는 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대와 걱정과 우려와 적자를 무릅쓰고 “강행”한 것이다. 왜 이런 과감한 결단을 학문 인프라 구축에는 하지 못하나.

또 어떤 사람들은 재원마련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이 또한 뜻을 먼저 세우고 방법을 찾으면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조세와 국방은 국가 정책의 근본을 이룬다. 사회 일각에서는 부유세 신설도 제기하고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부자들한테서 특별세 걷어 오로지 학문진흥에만 지원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은 법인세 1%를 주장한다. 연간 2천억원 정도 된다. 연간 2천억이면 내가 알기로 현재 진행 중인 BK사업보다 오히려 많을 것이다. 마인드만 바꾸면 얼마든지 돈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국방비를 제대로만 써도 돈을 좀 남길 수 있다. 현재 군납비리에 대한 수사가 확대되고 있는데, 이는 매우 바람직하다. 우리 나라 한 해 국방비는 대략 17조 6천억 정도 된다. 그 중 60만 대군을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데에 적어도 60%가 쓰인다. 이런 곳에 들어가는 군납품은 그리 중요한 기밀이 될 것도 없다. 이거 모두 인터넷 경매 붙이면 적어도 반값에 조달할 수 있다. 예전에 정부 모 부처에서 부처 조달품을 인터넷을 통해 경매로 조달한 결과 예전보다 70%의 비용을 절감한 예가 있다.

17조원의 60%면 10조가 넘는다. 그 중 절반을 아끼면 연간 무려 5조원이 남는다. 병사들 먹이고 재우는 문제, 물론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만큼이나 학자들 먹이고 재우는 문제도 중요하다. 하루라도 병사를 먹이지 않으면 국가 존위가 위태롭다는 것은 누구나 느끼는 것이지만, 학자들이 굶고 있어도 또한 국가 존망이 위태하다는 것은 아무도 느끼지 못한다. 역시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MIND이다.

어디 돈 나올 구멍이 이것 뿐이겠는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은 헛말이 아니다. 경제개발 5 개 년 계획도 성공적으로 잘 했다. 차세대 생존전략 10대 과제 선정해서 올해부터 당장 연간 3조원씩 들어간다. 잘하는 일이다. 이제는 학문진흥을 위해서도 제발 장기적인 “국책사업”을 벌여야 한다 (BK21 사업은, 우선 예산 규모 면에서 “국가적 사업”에 끼지 못한다).

돈 없다고 하기 전에 우리 “마음”은 있기나 한지, 학문이 망해 가는 것이 은행 문 닫는 것만큼, 휴전선 장병들 굶기는 것만큼 절박한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그것부터 먼저 자문해 보라.

5. 인재양성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제 좀 더 구체적인 위기 극복 방법에 대해 얘기해야겠다. 정부에서도 간혹 학문을 진흥시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은 잘 하는데 (특히 선거철에), 진심인지 거짓인지 알 수는 없어도 그 다음에 나오는 대책들 보면 나 같은 과학자들 속을 시원하게 해 주지 못한다.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이 내놓는 대책의 비전은 원론적인 얘기들 뿐이고 구체적인 정책은 급조된 땜빵들이 대부분이다. 이공계 위기를 정말 근본적으로 치유하고 싶다면, 다음 제안에 귀기울이기 바란다.

첫째, 경제논리를 버려라.

둘째, 고속철 하나 더 건설한다는 심정으로 “국책사업”을 벌일 각오를 해야 한다.

셋째, 고급인력들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라.

넷째, 인재양성 시스템을 구축하라.
첫 번째와 두 번째 항목은 앞서 이미 장황하게 설명했었다. 특히 첫 번째 항목과 관련해서 한 가지 부연하자면, 이제는 제발 학문에 “투자”한다는 표현 좀 자제했으면 한다. 적어도 투자의 우리에게 사회화된 의미는, 이를테면 1000원 지금 집어 넣으면 머지 않은 미래에 (보통 정부 관료들은 1년을 못 참는다) 1300원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기대라고 할 수 있다. 학문에 '투자'하겠다고 생각하는 정책입안자들 머릿속에는 마치 증권시장 가서 주식 사는 것과 같은 생각이 맴돌 것이다. 정부 관리들이나 여타의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학문의 발전은 요원하다.

이 분들에게는 학문이란 실패의 연속, 잘못된 모델링의 반복, 끝없는 시행착오, 의미 없어 보이는 단순 작업의 반복,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한 도전, ... 이라는 말들이 전혀 이해되지 않을 게다.

학문에 돈 쏟아붓는 것은 결코 이런 개념이 아니다. 냉정하게 얘기해서, 그냥 “돈 버리는” 일이다. 우리 정부가, 대지진 참사로 고통받는 이란 정부에 구호물자를 보내고 구호금을 1억 달러 쯤 보냈다고 하자. 이게 투자인가? 지금 형편 좀 좋을 때 못 살고 힘든 나라 도와 줘야 우리가 힘들 때 도움 받을 수 있다는 보장형 보험이라도 되나?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런 구호금은 국제 사회 일원으로서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비용”에 가깝다. 장병들 밥 먹이고 옷 입히면서 우리는 “투자”라고 하지 않는다. 물론, 좋은 음식과 좋은 장비는 군대의 사기를 높일 것이고 결국 더 확실한 방어태세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우리 경제가 얼마 더 안정화될 것이기 때문에 얼마만큼 장병들 복지를 더 증진시킬 수 있을지 경제학자들이 계산하지 않는다. 돈 놓고 돈 먹는 “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냥 비용이다. 한 국가가 국가로서의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출해야만 하는 그런 돈이다.

학자들에게 쓰는 돈도 이와 비슷하다. 내가 연구하는 입자 이론 물리학, 이거 아무리 열심히 해 봐야 돈 못 벌어 준다. 나한테 1년에 1억원을 연구 지원비로 준다고 해서, 내가 그 돈을 1년이나 2년 후에 1억2천만원 혹은 2억원으로 되돌려 줄 수 없다. 내 연구 성과가 산업적으로 이용되어 내후년에 큰 돈을 벌어다 줄 가능성? 물론 0이다. 그러니까, 제발 기초 학문 하는 사람들한테 돈 몇 푼 쥐어주면서, “이 연구의 산업적 효용성” 이런 질문 하지 말기 바란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거 없다. 혹여 몇 단계 거쳐서 오랜 세월이 지나면 내 연구 성과가 경제발전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말하자면 북경 나비의 날개짓이 뉴욕 앞바다에서 해일 일으키는 수준에 비견될만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기초학문 살리려면 학자들한테 돈을 펑펑 쏟아서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 그 돈이 아깝다고 생각이 들면 우리 나라는 중진국에 머무르게 되고 당연히 지불해야 되는 돈이라고 생각이 들면 그제서야 우리의 재경부 나으리들과 비로소 대화가 가능해질 것이며 선진국 진입과 소득 2만불 시대는 머지 않을 것이다. 경제학자들이나 재경부 관료들은 이런 데 쓰는 돈이 아깝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잘못된 선심공약으로 쓸데없는 “저속철” 만드느라 내다버린 18조가 훨씬 아깝다.

실제로 돈을 쏟아 버릴 때에, 학자들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평가는 해야 할 것이고 자금의 차등지원 또한 현실적인 문제일 것이다. 학계에서도 연구비를 사적으로 빼돌린다든지 하는 일들이 전혀 없지 않을 테니까, 사실 학계 내부에서 개선할 점도 분명히 많다.

이런 점들을 인정하면서 내가 정부나 사회에 요구하는 것은, 제발 다른 논리나 메커니즘이 아닌 지극히 학문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보려고 노력해 달라는 것이다. 요컨대, 학문에 “투자”하지 말고, 인류 공동의 지적 산물을 만들어 내는 일에 경제대국에 걸맞는 “댓가”를 지불하기 바란다.

그렇다면, 도대체 돈을 어디다 어떻게 “버려야” 할까? 정부에서 이공계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고급 인력들의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미 각 대학에서는 대학원 중심 대학을 기치로 내걸고 석박사 인력들을 대량생산하고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이런 인력들을 제대로 흡수할 스펀지가 없다. 이는 정부의 시선이 기업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갈 데 없는 석박사 인력은 그 자체가 “값싼 고급 노동력”일 수밖에 없다. 정부나 대학이 이들의 향후 진로에 대해서는 전혀 대책을 세우지 않고 무작정 대학원 정원만 늘리고 BK사업으로 대학원생들 월급 대 주는 것은 종국적으로 기업들만 살찌우게 되어 있다. 이공계가 사회적으로 홀대받을 수밖에 없는 데에는 이런 구조적인 결함이 큰 역할을 한다. 도처에 널려 있는 게 “공돌이”인데, 어느 기업주가 비싼 돈 주고 엔지니어 데려 올까.

당장 대학에 가서 이공계 대학원생들 붙잡고 물어보라. 연구 활동에 가장 큰 장애가 뭐냐? 아마 십중팔구는 ‘불안한 미래’라고 답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석사나 박사를 마치고 나서 이들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중점적으로 해야 한다. 기업이나 산업체 중심이 아니라, 바로 이 사람들의 시각에서 문제를 들여다 봐야 한다. 이 사람들이 학위 받고 나서 연구를 계속하든 취직해서 돈을 벌든, 어쨌든 갈 곳이 많으면 이들의 몸값은 올라간다. 반대로, 지금처럼 오갈 데가 거의 없으면 이들의 몸값은 곤두박질친다. 즉, 정부에서는 이공계 출신들이 학위를 받고 나서 갈 수 있는 곳을 많이 만들어 주면 된다. 너네들이 알아서 직장 구하라고 하지 말고, 정부에서 인위적으로라도 일자리를 만들어 줘야 한다. 이런 고급 인력들이 자기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학문이 발전한다.

정부에서는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대학과 기업을 연결시켜서 신기술을 계속 개발해 내고 이것을 산업적으로 응용하여 좋은 제품 만들어 낼까에만 고민을 집중해 왔다. 최근 대통령의 화두라는 이른바 “클러스터”라는 것도 이런 기업중심적인 사고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이는 당연한 것이, 그 단어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나온 것이고 그것을 대통령이 차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래서는 사실 죽도 밥도 안 된다. 기업 중심적인 산학협동의 결과로 얻은 신기술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오히려, 이는 대학의 자율성과 창조적 생명력을 좀먹는다. 대학과 연구의 본질은 그 자유로움에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대학 중심에서, 지식 창조자의 관점에서, 학자들의 시각에서 이들이 자기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마당을 충분히 만들어 주는 것으로 족하다. 그 결과를 이용해서 돈 벌려고 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걱정 안 해도 될 만큼 수두룩하다. 기업들이 어떤 집단인가. 돈에 미쳐 돈 벌려고 환장한 곳이 바로 기업 아닌가. 정부가 그렇게 나서지 않아도 돈 벌고 싶은 사람은 대학 주변에 얼쩡거리게 마련이다. 아쉬우면 자기들이 돈 줘서 “투자”도 하고 건물도 지어주고 인적교류도 하고 그럴 것을 굳이 정부가 세금 빼 주고 부지 마련해 주고 하면서 멍석 다 깔아줄 이유가 도대체 뭔가.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관점을 180도 전환해서 대학과 학자들과 학생들을 중심에 놓고 정책을 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들의 몸값을 정부가 높여줘야 한다. 정부가 고급인력들을 싸구려로 전락시키는 정책을 펴지 않으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기능 있는 사람들의 손을 거치는 것에 대한 지불이 후하지 않다. 이공계 기술자, 엔지니어 등등 뿐만 아니라, 컨설팅 회사의 자문을 받는 것에 대한 비용이 그다지 크지 않은 것도 좋은 예이다. 이런 풍토는 능력 있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가 되는 데에 큰 걸림돌이다 (물론, 투명한 조세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독일에서는 마이스터의 손끝만 거쳐도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대체로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에서는 사람의 손길과 능력을 거치는 것에 매우 비싼 값을 매겨준다. 그래야 그런 전문가들이 많이 양산된다. 우리 나라는 정반대다. 정부에서 이들을 비싸게 취급해 주면 기업체가 이들을 홀대할 수 없다. 마치, 양곡수매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제 구체적인 제안을 좀 해 보자면, 정부에서 이공계생들의 일자리를 획기적으로 마련해 줘야겠는데, 무엇보다 연구소 많이 짓고 대학에서 교수 자리 많이 늘리는 게 시급하다.

연구소 얘기부터 먼저 해 보자. 연구소 지어 달라고 하면 또 무슨 산업적 연계 이런 것부터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기업이나 산업이나 돈벌이나 이런 거하고 전혀 상관없는, 정말로 연구원들이 아무 생각없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그런 “순수” 연구소 많이 지어야 한다. 정부가 이런 방향으로 집중하면 특수한 산업적 목적의 연구소는 오히려 기업에서 앞다투어 지어줄 것이다.

일본의 동경대나 도호쿠 대학 같은 곳에는 학과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부속 연구소가 딸린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예컨대, 물성과학 연구소 같은 곳에 박사급 인력이 백 명 이상 모여 있다고 한다. 이런 곳에서 박사 학위 받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것이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데, 예를 들자면 금속 A와 금속 B를 비율을 계속 바꿔가며 섞어서 그 합금의 강도, 광택, 전도도 등 기본적인 성질들을 계속해서 조사해 나가는 그런 일들 한다고 한다.

우리가 보기엔 뭐 그런 일에 박사급 인력이 필요할까, 그런 단순한 일 하는 데 무슨 연구소까지 지어서 난리를 떨까 싶지만, 그렇게 해서 쌓인 데이터는 그 자체가 중요한 학문적 성과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일단 그렇게 학문적 성과가 쌓이면 어떻게든 그것으로 돈을 만들거나 군사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일본이 미국도 부러워하는 전투기 복합일체 성형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나, 미국 우주 왕복선에 일본에서 개발한 신소재들이 쓰이는 게 우연이 아니다.

우리나라엔 이런 연구소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인문학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했었는데, 특히 인문학 관련 연구소 많이 세워야 한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퇴계 연구소 짓고, 율곡 연구소, 고려청자 연구소, 고구려 연구소, 한글 연구소 (이미 있는지도 모르겠다), 문화재 복원 연구소, 등등등. 이런 연구 기관들이 대학원 과정과 긴밀한 관련을 가지면서 오갈 데 없는 대학원 인력들을 흡수해야 한다. 이렇게 세워질 연구소들은 향후 우리 나라의 중요한 씽크탱크의 역할을 수행해 나갈 것이다 (그렇다고, 대책없이 무작정 연구소만 지으면 안 된다. 학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또 돈타령이나 할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가장 성공적인 기초과학 연구기관은 고등과학원 (KIAS)이다. 고등과학원이 얼마나 훌륭한 성과들을 내고 있는지는 이 바닥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논문편수나 인용횟수 등에서 정말 “세계적인” 연구소라 할 만하다. 이곳의 1년 예산이 겨우 100억 정도밖에 안 된다. 물리, 수학, 화학 등 세 분야가 모여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큰 돈이 아니다. 법인세 1%면 이런 연구소 약 17개 운영할 수 있다. 기초과학이나 공학 계열의 연구소는 설비비가 많이 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인문학 계열의 연구소는 거의 돈 들어갈 일이 없다. 건물 올리고 나서 월급이나 제때 주고 빵빵한 컴퓨터 몇 대만 갖다 주면 사실 그걸로 족하다. 그게 몇 푼이나 되겠나. 1년에 1조원씩만 인문학 연구소 육성에 붓는다고 하면 고등과학원 급의 연구소를 무려 100개나 굴릴 수 있다. 지금은 워낙 인문학 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연구소 100개 지어도 연구원들이 없을 터이지만.

연구기관의 확충과 함께, 대학 교수들의 양적 팽창 또한 시급하다. 국민 1인당 교수 비율 따져보면 아마 미국이나 일본과 현격한 차이를 보일 것이다. 물리학과의 경우를 보자면, 서울대나 연세대 물리학과 교수진이 서른 명 안팎이다. 그런데, 제대로 물리학 하려면 적어도 배 이상의 교수진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판단이다. 모든 대학의 교수진이 배 이상 늘어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컨대, 카이스트 같은 곳을 거점으로 지정해서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진을 한 100명 정도까지 (단계적으로) 늘린다면, 이런 대학이 전국에 한두 곳만 있어도 한국 물리학의 미래는 매우 밝을 것이다.

교수진을 대폭 늘리는 것은 물론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다른 대학들의 반발도 예상되고, 지금도 부족한 공간문제도 있고 특정 분야만 특혜를 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런 어려움을 인정하면서도 교수진의 양적 팽창을 주장하는 것은 이제는 기초 학문에서도 우리가 “규모의 경제학”을 실현할 때가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기초 과학이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전문가의 태부족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로 인해 학계가 받는 고통은 의외로 크다.

각 분야별 전문가가 소수이면 학자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하다. 한 학자에 대한 가장 믿을 만한 평가는 바로 그 커뮤니티 내부의 평가이다. 외부의 사람들은 사실 누가 어떻게 연구하고 논문 쓰고 세미나에서 무슨 질문들 하고 이런 거 모른다. 겉으로 드러난 논문 편수는 허수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정부에서 연구비 지원할 때 정작 필요한 곳에 돈이 가지 못하는 수가 생긴다.

과중한 학과 업무 부담으로 인해 자기 연구에 몰두할 수 없는 것도 큰 문제다. 그리고, 뭔가 연구를 하려고 해도 주위에 같이 토론할 사람이 별로 없어서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교수진 100명에다가, 각 교수가 연구원 한 명씩만 데리고 있어도 박사급 인력이 한 울타리에 200여 명 모여 있게 된다. 이 정도면 정말 뭔가 해 볼만하다. 고급 인력이 모여 있다는 것은 바로 정보와 지식이 집중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보의 집중과 빠른 유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요즘 같은 인터넷 세상에서 새삼 강조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요컨대, 연구소를 많이 짓고 대학 교수를 양적으로 팽창시키고 하는 것들을 통해 박사급 고급 인력들의 일자리를 확보해 주고 전반적인 “규모”를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욕심을 부린다면, 대규모 연구 단지 혹은 거대 프로젝트의 유치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돈이 천문학적으로 소요되는 일이라 우리 나라가 중심이 되고 일본이나 미국, 중국 등을 끌어들여 해외자본 유치한다고 해도 국가 경제의 허리가 휠 수도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거대 프로젝트는 그만큼의 “값어치”는 충분히 해낸다.

일본의 고에너지 연구소 (KEK)를 예로 들면, 여기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물리학자와 엔지니어가 수천 명이다. 이 자체가 이미 규모의 “경제학”을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KEK 내부의 Belle 입자 검출기 그룹은 최근 입자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들을 연거푸 해 냄으로써 미국과 함께 이 분야의 양대 거점으로 올라선 지 오래다.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이로 인한 일본이라는 국가 이미지 개선은 말 그대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학자들은 중요한 결과가 나온 논문을 읽으면서 항상 Belle Collaboration이라는 연구그룹 이름을 접하게 되고 수많은 일본학자들의 이름과 일본 대학들과 일본 연구소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전체적으로 “일본의 가속기”로 인식된다. 전세계의 수많은 고급 인력들이 한달 단위로 아니, 일주일 단위로 이런 “국가 광고”를 접한다고 생각해 보라. Belle의 중요한 실험 결과 발표는 아사히 신문 1면을 장식할 뿐만 아니라 뉴욕 타임스 1면에도 실린다.

우리나라의 많은 학자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KEK 등지에서 입자물리 실험을 하고 있지만, 결국 남의 나라 가서 하는 실험이다 보니 제대로 된 성과가 하나도 안 남는다. 반면에, 일본은 이미 이 분야에서 독자적이고 자생적인 기술력과 노하우를 축적했다. 이번에 새로 승인된 JPARC 계획까지, 일본 열도에는 모두 네 개의 입자 가속기가 생겨나게 된다. 이런 나라 지구상에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성과가 한국에 고스란히 남는” 그런 프로젝트 벌여야 한다. 우리 나라의 현재 수준은, 양양에서 벌이고 있는 암흑물질 탐색 연구에 고작 30억 쯤 들어간 정도다. 당장 우리도 가속기 만들자는 얘기가 아니다. 어느 분야든, “국책사업”으로서의 거대 프로젝트도 이제 한 번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는 얘기다. 그로 인해, 기초학문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야 한다. 대형 연구단지가 들어서면 그것이 파생시키는 고용효과가 엄청나다. 학자들뿐만 아니라 사무직이나 여타 제반 설비들, 인근 상권 형성 등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가 생겨난다. 이렇게 되면 보통 사람들이나 사회의 기초 학문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자체가 매우 훌륭한 국가 이미지 광고 매체가 될 것이다.

6. 대한민국의 새로운 생존전략

군사정권의 개발 독재에 의한 노동집약적 수출로 우리가 먹고 사는 구조는 이제 종말을 고하고 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일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저임금에 바탕한 제조업으로 우리의 생존을 담보할 수는 없다. 아직까지도 사회 일각에서 낡은 구조에 기대어 먹고 살기를 바라는 기업이나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임 김대중 대통령이 높이 평가되어야 할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IMF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앨빈 토플러 그룹을 불러다가 이른바 “국가 컨설팅”을 의뢰한 것이다. 그 결론이 무엇이었던가. 기존의 경제 구조로는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정보화와 지식 기반 산업의 육성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으로 파격적이고 담대한 계획이었다. 심형래를 신지식인으로 지정한 것도 자기 기술과 자기 능력이 있는 장인들의 가치를 최대한 존중하여 그런 각 분야 전문가들을 육성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공화국 수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웃음을 던진 것도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초고속 통신망을 안방까지 까는 등 정보화의 인프라에 대한 개념은 있었을지언정, 인재 양성의 인프라에 눈 뜨지 못하고 신지식인 선정으로 그친 것은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 정부가 생각한 우리의 새로운 생존 전략은 고급 인력의 양성을 통한 고부가가치 산업의 육성이다. 이 방향성은 매우 올바르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믿을 것은 결국 “사람”밖에 없지 않은가.

머지않아 중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동북아의 경제블럭이 형성될 가능성이 많은데, 저임금에 바탕한 중국 제조업과, 높은 기술력과 탄탄한 기초에 기반한 일본 제조업의 틈바구니에서 우리가 살아 남을 길은 고급인력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최근 한국 드라마와 영화 산업의 급성장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제조업의 중요성을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나는 단지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영상매체 산업의 급성장과 일정한 성공은 우리에게 가능성과 함께 한계점도 동시에 보여준다. 우리 나라의 문화적 잠재력과 산업화의 가능성에 밝은 빛을 보여준 한편으로, 결국 우리가 극복해야 할 벽은 핵심적인 “컨텐츠”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이는 최근 흥행에 실패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패인을 분석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예컨대, 제작비 120억원이 들어간 원더풀 데이즈의 경우 시나리오와 구성의 밋밋함이 가장 큰 패인으로 꼽힌다. 결국 “스토리”가 부실하다는 말인데, 이것이 바로 핵심 컨텐츠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핵심 컨텐츠는 어떻게 생겨날까? 일본에서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 스토리 작가가 따로 있다. 이들은 따로 교육되고 따로 성장한다. 우리 나라 애니메이션 수준이 그림 그리고 색칠하는 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면서도 여태 죽을 쑤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이 “스토리 작가”의 부족 (그리고 기획역량의 부족)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인문학의 깊고 넓은 저변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느끼게 된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스토리 수준은 결국 그 사회의 인문학의 수준이다.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이 그냥 영국에 떨어진 것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뉴튼 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힘의 개념도 학자들에 의하면 이른바 헤르메티시즘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마술, 마법사, 고양이, 빗자루, 늑대인간 등의 코드로 통하는 문화적 전통이다. 인문학이 발전해야 기초과학이 발전하고, 또 기초과학의 발전이 인문학 발전을 돕는 전형적인 예라 하겠다. 지금 일본이 야심차게 내세우는 인간형 로봇을 개발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데스카 오사무의 “아톰”을 보고서 꿈을 키워 온 공학자들이다. 풍성한 인문학적 인프라, 지식기반이 전통적인 굴뚝산업과 결합되면 그 폭발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나는 이런 의미에서 제조업과 지식기반 산업을 선택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에 반대한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 흥행이 성공하는 드라마나 영화의 상당수가 인터넷 소설과 관계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상산업의 핵심 컨텐츠인 “스토리”가 바로 인터넷 상에서 태어난다는 점 말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높은 가능성과 기대감을 주는 부분이다. 이것이 또한 우리의 문화적 잠재력을 확인시켜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정부에서는 단지 초고속 인터넷망을 깔아 주었을 뿐이다. 영화사를 중심으로 해서 소설 쓰는 초보 작가들 연결시켜 준 것도 아니고 대학 국문학과와 충무로를 산학협동으로 연계한 적도 없다. 정부에서는 그저 능력 있는 작가들이 자기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최대한 확보해 주는 데에 주력하면 된다. 그것이 돈벌이로 연결되는 것은 민간에서 다 알아서 하는 일들이다. 대신 정부는 합리적이고 공평한 규칙과 질서만 부여하면 된다.

이공계 문제를 바라보는 것도 이와 같은 시각이어야 한다. 학자 개개인들, 공학도 개개인들에게 간섭하는 형식으로는 이공계가 죽는다. 기업체 입장에서 이들을 돈벌이 아이디어맨으로 치부하는 이상 이공계의 미래는 없다. 어떻게 하면 이들이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그 장을 만들어 줄 것인가, 이들이 기본적인 최저 생계를 유지할 수는 있을까, 이들이 나이가 들었을 때 어떤 사회 봉사의 기회를 줄 것인가 등에 집중해야 한다.

국가가 나서서 고급인력들에게 후한 값을 쳐 줘야 그 성과물에 대해서도 우리는 다른 나라에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 기업들은 이런 고급 인력을 사용하는 댓가를 비싸게 치룰 것이고 그만큼 다른 비용을 절감하면서 품질의 고급화를 꾀할 수 있다. 고급 인력의 육성과 지식 기반 산업- 이를 통해서만 대한민국이 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설 수 있고, 선진국 진입과 세계 중심 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


7. 맺음말 - “목숨 걸고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

결론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공계의 위기는 대한민국 학문의 위기의 전면화된 현상이기 때문에 그 처방 또한 국가의 존망과 결부시켜 마련되어야 한다. 한강 물 깨끗하게 하려고 들어가는 돈이 연간 2~3조원이다. 대한민국의 생존과 미래를 기약하려면, 내 생각에 적어도 이만큼의 액수가 매년 기초학문 육성에 “버려져야 한다.” 이 대책이 단발성 땜빵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짧게는 10년, 길게는 100년을 내다보는 안목으로 정말 국가적인 “국책사업”을 벌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고위 공무원들의 “인식과 마인드의 변화”이다.

맺기 전에, 입자 물리학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예를 하나 소개한다.

미국 시카고 근교에는 테바트론이라는 세계 최대의 입자 가속기가 있다. 그 기계를 처음 만들 때, 의회 국방위원회에서 (그때나 지금이나 펜타곤이 여전히 돈줄을 쥐고 있으니까...) 청문회를 했다. 그 청문회에 나온 물리학자가 윌슨이라는 사람인데, 입자 물리학에서 아주 큰 업적을 남긴 매우 유명한 과학자다. 국방위원들이 물었다.

"그 가속기가 국토 방위와 무슨 상관이 있지요?"

그러자, 윌슨이 대답했다
"이 가속기가 조국을 지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미군이 이 가속기를 목숨 걸고 지키게 될 것입니다."

윌슨은 테바트론으로 말미암아 미국이 목숨 걸고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초대형 가속기를 운영하는 데에는 최첨단의 과학기술이 모조리 동원된다. 그런 것들이 굳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이득을 가져다 주는지 계산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럽 입자 가속기의 과학자들이 인터넷을 처음 고안해 낸 것 또한 경제적으로 얼마만한 가치가 있는지 계산할 수도 있듯이. 그러나, 그런 거대 가속기의 존재, 그리고 거기서 이루어 낸 과학적 발견들은 도저히 돈으로 환산될 수 없다. 학문의 존재 의의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돈 몇 푼 더 벌어주는 가속기 때문에 미군이 목숨을 걸지는 않을 테니까. 우리 젊은이들은 대한민국을 목숨 걸고 지킬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까. / 가이우스  


출처 : 다음 아고라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5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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